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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추위가 여전한 25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정동사거리를 찾았다. 덕수궁 돌담길 전 구간(1.1㎞)이 131년 만에 연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둘러볼 생각이었다. 이 돌담길은 1884년 영국이 정동 대사관 부지를 사들이면서 170m 구간이 단절돼버렸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담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추위 탓인지 평소와 달리 인적이 뜸했다. 평소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곤 하던 장소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이 굳게 닫혀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란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대표적인 볼거리로 자리 잡은 수문장 교대식도 볼 수 없었다.
조금 더 걸어 모퉁이를 돌자 영국 대사관이 나오고 돌담길은 거기서 끝난다. 한참을 우회해 덕수초등학교까지 오니 비로소 돌담길이 보인다. 다시 정동사거리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분 남짓. 고종황제의 거처인 덕수궁이 이렇게 작다니 의외였다. 이곳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살던 집으로 궁으로 만들기 위해 늘리고 늘렸지만 한계가 있었다. 월산대군은 '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로 시작하는 교과서 수록 시조를 쓴 바로 그분이다.
산책을 끝내려는데 돌담길에 특이하게 생긴 조형물이 보인다. 위에서 아래로 눌려 키가 절반으로 작아진 사람들이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 같다. 작가는 장독대에서 겨울나기 하는 가족을 떠올려 만들었다며 제목을 '장독대'로 지었다. 작가의 깊은 예술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리니 오른쪽에 이영훈 노래비가 눈에 띈다. '이영훈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만든 노래비에는 '광화문연가'의 노랫말과 그가 만든 숱한 명곡의 제목이 새겨져 있다. 그는 이문세의 입을 빌려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을 노래했다. 날이 추운 탓인지 세월이 변한 탓인지 정겨운 연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돌담길이 모두 이어지면 다시금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기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