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누가 제주공항을 난민촌으로 만들었나



지난해 휴가 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 캘거리공항에서 미국 시애틀로 이동하던 과정에서 겪은 일이다. 탑승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던 중 항공기가 기체 결함으로 갑작스레 결항됐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 100여명의 승객은 델타항공사 카운터 앞에서 대체항공편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를 막막한 상황은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델타항공 직원이 대기승객들에게 대체항공편을 예약해주는 '에이전트 콜(Agent Call)' 서비스를 안내했기 때문. 직원 안내에 따라 전화를 하니 에이전트는 어느 항공사에 예약했는지에 관계없이 승객이 원하는 시간대로 재예약해줬다. 기자도 알래스카항공편으로 변경해 항공사 카운터 앞에 줄을 서지 않아도 됐다. 항공사를 변경했지만 추가비용도 없었다. 승객 이동에 따른 비용은 항공사 간에 정산했다.

항공기 결항이 잦은 북미 지역에서는 이런 '에이전트 콜'이 보편화돼 있다. 항공기가 무더기로 결항되더라도 항공사 간 네트워크 통합서비스가 갖춰져 있어 발권창구 앞에서 줄을 길게 설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 제주공항에서는 1990년대에나 발생할 법한 일이 벌어졌다. 한파와 폭설로 제주공항의 항공기 운항이 사흘간 중단되자 탑승권을 구하기 위해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며칠째 발권창구 앞에서 길게 줄을 서 있어야만 했다. 체류객들은 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고 결국 종이 박스를 침대 삼아 이틀 밤을 지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저비용 항공사들이 매출 확대를 위해 항공기 구입에만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발권통합서비스 구축 등 서비스 개선 비용은 최대한 아끼려고 하면서 사상 초유의 '공항 난민'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비상사태에 대한 제주공항의 대응도 미흡했다. 지난 2011년 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기자는 공교롭게도 나리타공항에 있었다. 공항에서도 심각성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진동이 심해 당일 모든 항공 일정이 취소됐다. 수많은 승객이 공항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공항 측은 저녁이 되자 즉각 체류 중인 모든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매트리스 등 구호용품을 지급했다.

이와 달리 제주공항에서는 관계부처와의 논의 등을 이유로 체류객에 대한 편의 제공이 늦어지면서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부터 강조하고 있는 주요 정책목표 가운데 하나가 항공소비자 주권 강화다. 하지만 이번 제주공항 사태를 보면 이 같은 정책목표는 '헛된 구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사회부=강동효기자 kdhyo@sed.co.kr


관련기사



강동효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