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한국의 강점 對 미국의 장점


한국은 배울 점이 많은 나라다. 미국 특파원 생활을 2년 반 남짓하며 여러 번 느끼는 사실이다. 겨우 반세기 만에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 달성하는 과정에서 후진적 요소가 사회 곳곳에 남아 있지만 선진국 이상의 강점도 상당수 갖췄다.

처음 미국에 정착하려는 한국인은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자동차국(DMV)을 찾았을 때 대부분 울화통이 터진다. 한국과 달리 긴 대기 줄은 기본이고 직원들의 업무 처리 능력은 미숙하기 그지없다. 행정 시스템이 허술하고 한국과는 정반대로 민간에 취업하지 못한 인력들이 공무원이 되는 미국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 미국 가게의 직원들은 잔돈 계산을 곧바로 하지 못할 정도로 산수 능력이 떨어진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걸핏하면 한국 교육을 극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이 선진국 가운데 전 국민 의료보험체계를 갖추지 못한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도 이해하기 힘들다. 1년에 최소 1만달러에 달하는 민간 의료보험료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가정의 경우 가족 가운데 한 명이 큰 병에 걸리면 가계파산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산실답게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되는 나라다. 3년 전 음주운전으로 4명의 사망사고를 내고도 이른바 '부자병(affluenza)'이라는 희한한 병명으로 풀려나 '유전무죄' 논란을 불러일으킨 미국 10대 청소년이 단적인 사례다.

또 미국 경찰서나 공공기관에 기부를 한 사람들에게는 교통법규 위반 때 한 번 봐주는 카드가 발급된다. 경찰이 주 상원의원 등 고위층에게 나눠주는 배지를 하나 얻은 사람이라면 음주운전에 걸려도 경찰관이 집까지 모셔다 준다. 경찰관들이 비번인 날에 도로 공사나 장례식, 음식점 개업 때 경찰차를 옆에 세워 놓고 경비를 하며 버젓이 부업을 하는 광경도 매일 목격된다.

요즘은 한국에도 많지 않은 후진적인 관행에 미국이 세계 1위의 강국 자리를 중국에 빼앗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을 이끌어가는 엘리트 집단의 리더십과 사회관리 시스템, 자정 능력을 보노라면 또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특히 정치인과 공직자에게는 엄격한 도덕성과 책임감이 요구된다. 유력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경우 재임 시절 개인 e메일 계정을 통해 공무를 처리했다는 이유로 대세론이 위협받고 있다. 한국이라면 사소한 논란에 그쳤을 사안이다. 물론 비리로 물러난 정치인이 컴백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뒷받침하는 학계의 잣대도 가혹할 정도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이 생활고에 몰려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은 처지로 전락한 것은 단 한 번의 말실수 때문이었다. 그는 2007년 "흑인이 백인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말했다가 '인종주의자'라는 비판에 사회적으로 매장됐다.

반면 한국에서 자칭 지도층이라는 인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떤가.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1980년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했고 1993년 동화은행으로부터 2억원가량의 뇌물을 수수해 실형을 받았다. 정권을 옮겨 다니며 권력을 추구한 철새 논란은 둘째치고 다 망해가는 은행의 목줄을 쥐고 거액을 받았다는 측면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

그런 그가 갑질 논란을 일으킨 노영민·신기남 의원에 대해 "엄중 대처"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더 가관인 것은 평소 "혁신" "개혁"을 내세우다가 요즘은 김 위원장 띄우기에 바쁜 친노 그룹이나 외곽의 학자들이다. 정치적 득실에 따라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제1야당이나 그런 야당을 장악한 과거의 비리 인사를 보노라면 왜 한국이 교육열·성취욕·역동성 등 그 숱한 장점에도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고 있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최형욱 뉴욕 특파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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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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