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주로 활용되는 병리조직검사, 이른바 생체검사는 질병이 의심되는 부위의 일부를 적출해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종양은 물론 염증과 면역질환, 퇴행성·선천성 질환 등 모든 질병에서 그 원인과 치료법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가장 활용도가 높은 분야는 역시 암이다.
하지만 기존 생체검사는 조직샘플을 채취하기 위해 침이나 펀치, 내시경, 복강경 등을 이용해 인체를 절개하는 침습적 방식을 사용한다. 때문에 환자가 느끼는 불편함이 적지 않고, 흉터가 남으며, 회복에도 시간이 걸린다.
조직 샘플링 과정에서 부작용의 우려도 있다. 또한 현 생체검사로는 폐·유방·대장·골수 등 특정 부위의 이상 유무만 분석이 가능하다. 그나마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짧게는 사나흘, 길게는 한 달여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빠르고 정확한 진단 및 치료가 완치율 제고의 첩경임을 감안할 때 이는 단순한 불편함 이상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기존 생체검사의 단점을 보완할 대안기술로서 최근 ‘액체생체검사’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액체생검은 쉽게 말해 혈액과 같은 체액을 활용한 생체검사 기법을 뜻한다. 절개 등의 침습적 절차 없이 간편하게 환자의 체액만으로 검사와 진단이 이뤄진다. 그만큼 검사결과 도출 속도가 빠르다. 질병의 일부분만 분석할 수 있던 조직 샘플과 달리 체액, 즉 액체 생체 샘플은 질병에 대해 다각적 분석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유전체 분석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머지않아 여러 질병의 동시 분석까지 가능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특히 액체생검은 암의 진단에 탁월한 효용성을 발휘한다. 신체 부위별 혈액 내에 존재하는 암세포 유래 DNA를 분석함으로써 암 발생이나 전이 여부가 신속히 확증된다. 일례로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연구팀은 액체생검 기술을 활용해 초기 단계의 암 전이과정을 모니터링하면서 항암제 내성을 연구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혈액검사가 자궁암과 함께 폐암과 전립선암의 진단에도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액체생검 기술을 20년 가까이 연구해온 홍콩중문대학의 데니스 로 박사팀도 1만명의 중년남성들을 대상으로 혈액의 DNA를 분석, 17명의 암을 진단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들 모두 자신의 암 발병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13명은 1기에 조기 발견돼 완치 가능성을 높였다.
물론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검사비용이 과도하게 비싸다면 상용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액체생검은 이 부분에도 강점을 가진다.
유전체 분석 비용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암 진단기기 제조사인 지노믹헬스의 경우 올해 중 보급형 DNA 염기서열 분석장비를 약 1,000달러에 출시할 예정이다. 또 다른 액체생검 원천기술 보유업체인 가던트헬스는 1억 달러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 기술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태다. 액체생검 업체들의 진단기술은 5대 암에 속하는 폐암, 대장암, 유방암에 60% 정도가 집중돼 있으며 검사비용은 약 5,000달러로 알려져 있다.
다만 액체생검 기술은 아직 진단의 정확도에 대한 대규모 연구결과가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상용화까지 얼마가 걸릴지는 현 단계에서 단정 짓기 어렵다. 지금은 조직 검사가 현실적으로 어렵거나 암 발생시기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실용화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오래지 않아 정확성과 효율성, 안전성을 입증할 충분한 임상 데이터가 확보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는 직장인들의 종합검진 항목에 혈액을 이용한 액체생검이 포함될 지도 모를 일이다.
5대 암 사망자수
WHO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전 세계에서 820만명이 암과 관련해 사망했다.
1,400만명
2012년 전 세계 신규 암 환자수. 오는 2032년에 이르면 그 숫자가 2,200만명에 이른다는 게 WHO의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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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기준 (출처: W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