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한 선생은 1903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사탕무 농장을 경영하며 사업가로 크게 성공하고 국어학교인 ‘태극학교’를 운영하며 ‘대한인국민회’를 재건하는 데 앞장섰다.
1940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에 오른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고 미주 9개 독립운동단체가 참가한 한인대회 개최를 주도하는 등 미주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에 힘썼다.
선생은 광복 이후에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단장 자격으로 귀국해 조국 건설에 참가했고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농장 경영과 흥사단 활동에 전념했다. 선생은 1981년에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미주 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이끌며 조국 독립에 헌신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