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세운상가


1980년대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세운상가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 있을 수 있다. 세운상가 2층에 오르면 아저씨가 "비디오?"를 외치며 다가온다. "아니요"라고 사양해도 아저씨는 자꾸만 "좋은 거 있으니 보고 가"라며 붙잡는다. 학생들이 찾는 물건은 대부분 불법으로 복제한 LP레코드 즉 '빽판'이었다. 정품의 4분의1 정도 가격에 빽판을 사면 비록 음질은 좋지 않아도 핑크 플로이드(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나 퀸(another one bites the dust)이 부른 금지곡을 들을 수 있었다.

세운상가에는 야한 비디오나 해적판 레코드는 물론이요 웬만한 것은 다 있었다. "탱크도 만들어낸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었다. 이제는 벤처기업가로 변신한 미완의 우주인 고산씨가 세운상가의 명성이 자취를 감춘 2011년 이곳에 사무실을 낸 이유도 같다. 그는 "미국에서 본 조명기구를 찾다 찾다 세운상가까지 왔는데 그런 것은 없지만 하나 만들어줄 수는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여기는 뭔가가 없으면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단다.

이곳은 일제시대 때만 해도 공터였다가 1960년대 들면서 살길을 찾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거대한 판자촌으로 변모했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이곳을 재개발해 서울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1966년 판자촌을 철거하고 착공해 2년 만에 완공까지 한 것은 무지막지한 개발연대였으니 가능했으리라. 김 시장이 이 일대에 조성된 거대한 사창가를 '꽃' 대신 '나비'를 차단하는 '나비작전'을 펼쳐 끝장낸 것도 이때다.

1987년 서울 용산전자상가가 조성된 후 몰락의 길을 걷던 세운상가가 48년 만에 도심 흉물에서 문화·창업의 메카로 탈바꿈한다. 서울시는 이곳을 가족·연인이 찾는 명소로 바꾸고 창업센터 등을 설치해 창업·제조 기지화하기로 했다. '세계의 기운이 모인다'는 이름처럼 부활하기를 기대한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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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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