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55> 도리언 그레이 증후군





지인이 소개팅에 다녀왔다고 했다. 만남의 상대방은 유난히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남자였다고. 성형 티가 확 나는 얼굴, 어디선가 체계적으로 관리를 받는 듯한 피부, BB크림을 과도하게 바른 모습, 대화 중간에 SNS에 올리기 위해 음식 사진을 찍는 것까지 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부감이 들게끔 하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만나기 전 사진으로 봤을 때는 ‘본인을 잘 가꾸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고 나니 내면보다는 외모를 중시하는 실없는 남자인 것 같아 다시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고.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30대 초반 남성인 L 씨는 책상에 앉아서 수시로 자기 얼굴을 쳐다보는 습관이 있다. 그는 원래 남자다운 외모에 큰 키를 갖고 있는 미남형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여자를 만나기 3~4시간 전에는 반드시 사우나에 다녀오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땀을 흘려 붓기를 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상대방의 호감도 차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성과의 약속이 있을 때에만 외모에 신경 쓰더니, 나중에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업무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자기 얼굴이 어떻게 비칠지 염려하는 정도가 되었다. 그의 상급자조차 자신의 부하가 얼마나 외모 관리에 마음을 빼앗겨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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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도리언 그레이 신드롬’에 걸린 인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도리언 그레이는 19세기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에 나오는 미남 주인공이다. 자신의 꽃다운 외모를 무기 삼아 여러 여자의 마음을 흔들며 쾌락의 절정을 맛보던 도리언 그레이는 어느 날 문득 자기 얼굴과는 정반대로 추악하게 늙어가는 모습이 그려진 ‘자화상’을 보았다. 괴로움에 시달리던 도리언 그레이는 정신 이상자가 되고 스스로 가슴에 칼을 찔러 죽고 만다. 만약에 그레이가 자신의 외모를 삶의 성공 지표로 절대시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었다. 상식적으로 그림이 변한다고 해서 자신의 외모에 이상이 생기리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모와 정체성을 동일시했던 그레이는 논리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정말 냉정하게 본다면 그레이의 자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며 훌륭한 외모는 누군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에나 인사 채용을 결정할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기왕이면 잘생기고 예쁜 사람에게 몰아 주고 싶은 게 당연한 거라고 여긴다. 이런 믿음이 강할수록 ‘어떻게 보이는가’에 집착하게 된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나만 나로 인정한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모습을 갈구하게 되고 쉽게 성형중독에 빠지고 만다. 낮은 자존감을 메워 줄 뭔가가 간절한 것이다.

그러나 취업 면접에서, 승진 시험에서, 해외 지사 발령에서 당신이 고배를 마셨다면, 그 이유는 외모 때문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내 외모가 이래서 밀려났다’는 판단은 오산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패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하니까 지금 당장 바꿀 수 없는, 특히 노력으로는 어찌하기 힘든 외모를 부정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노력이 부족했다, 실력이 모자랐다고 인정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생겨서’라고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무언가를 탓하는 게 쉬운 법이니까.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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