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오락가락 제도개선의 이중잣대-정구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장


지난해 삼성물산 주주들은 보지 않아도 될 손해를 봤다. 투기성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공격에 대해 소요된 막대한 방어비용이다.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하다는 경제계의 주장에 정책당국은 대기업은 내부지분이 많으므로 방어수단이 필요 없다고 일관했으나 이는 오판이었다. 필자는 지난해 7월 상장회사 최고경영자(CEO)들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의 경영권 경쟁제도를 공정하게 개선해달라고 정책당국에 호소했다. 정갑윤 의원의 발의로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외면당했고 이제 19대 국회의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될 운명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 관련 법률이나 정책의 변화 동향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과거 외환위기 이후 기업 투명성 제고를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감사위원회 제도다. 낮은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나 경영 투명성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의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국회에 제출되는 상당수의 법안은 주로 주요 외국의 입법례를 제도개선 여부 판단의 기준잣대로 삼고 있다. 대부분 기업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주요 선진국의 제도가 이러니 우리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도 이를 지지한다.

그런데 경제계에서 기업 관련 규제 완화를 위해 주요국 수준으로 규제를 개선해달라고 하는 경우는 반대다. 규제 당국이나 시민단체 등은 소수 주주 보호나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지난 2006년 칼 아이칸의 KT&G 공격부터 지난해 엘리엇의 삼성 공격까지 투기성 헤지펀드의 공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경제계는 오래전부터 주요국에서 보편화된 차등의결권 주식이나 포이즌필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했지만 철저히 외면당했다. 우리나라는 감사나 감사위원회 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한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다. 이를 개정해달라 하면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손사래를 친다. 어떤 때는 선진제도이기 때문에 도입해야 하고 어떤 때는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기업 관련 규제의 강화 또는 완화에 대한 이러한 경향이 국회나 정부당국·시민단체의 반기업정서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글로벌 경제시대에 기업 관련 제도나 정책의 선진화는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른다. 우리 기업도 그러한 환경에 적응해 경쟁력을 높이고 세계로 나아가 더 많은 국부와 일자리 창출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역차별당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규제강화의 잣대가 선진국이라면 규제 완화의 잣대도 그 수준이어야 한다. 지난해 삼성이 지불해야 했던 막대한 경영권방어 비용은 삼성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했던 재산이다. 오락가락 제도개선의 잣대에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불필요한 규제부담은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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