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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권과 경제난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미 대선판에서 '아웃사이더' 돌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미 대선 레이스의 2차 관문으로 지난 9일(현지시간) 실시된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이 압승하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세론에 또 한번 큰 타격을 줬다. 공화당의 경우 8일 전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에게 일격을 당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2위에게 큰 격차로 승리하며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0일 오전1시40분 현재 개표가 89% 이뤄진 뉴햄프셔주 경선에서 민주당의 샌더스 후보가 60.0%를 얻어 38.4%에 그친 클린턴 후보를 눌렀다. 공화당에서는 트럼프가 35.1%를 획득해 15.9%의 존 케이식 오하이오주지사를 압도했다. 이어 크루즈 상원의원(11.5%), 젭 부시 전 플로리다주지사(11.1%),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10.6%) 등의 순이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번에 사실상 2연패를 당하면서 경선 장기화를 예고했다. 그는 8일 전 아이오와주에서 겨우 0.25%포인트 격차로 샌더스 의원을 이겼다. 뉴햄프셔는 일반 유권자들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첫 프라이머리 주라는 점에서 아이오와 코커스와 함께 경선 초반의 양대 '대선 풍향계'로 통한다.
물론 뉴햄프셔주는 샌더스 의원의 지역구인 버몬트주와 인접했고 지지층인 백인 유권자의 비율이 높아 일찌감치 샌더스 의원의 승리가 예상됐다. 문제는 클린턴 후보가 무려 20%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패배하면서 샌더스 열풍이 갈수록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 아이오와 코커스 이후 샌더스 후보는 전국 지지율에서도 클린턴 후보를 불과 2∼3%포인트 격차로 따라붙었다. 클린턴 후보가 2012년 리비아 벵가지 미영사관 피습사건, 고액 강연료 논란,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성추문' 사건 재부각, 'e메일 스캔들' 등 각종 악재에 시달리며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힐러리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언더독(underdogㆍ이길 가능성이 없는 후보)'의 이변이 지속될지는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후 치러지는 네바다(20일), 사우스캐롤라이나(27일) 지지율 조사에서 샌더스 의원을 2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고 '슈퍼화요일(3월1일)'에 실시되는 12개 주에서도 우세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경선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상황에 빠졌다는 얘기다.
공화당의 경우 트럼프가 대세론에 불을 붙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에 '트럼프 현상'이 일시적 거품이 아닌 밑바닥 민심이라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백인 보수층의 상대적 박탈감, 워싱턴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 힘입어 뉴햄프셔는 물론 전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각종 막말 파문에다 본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트럼프 광풍에 공화당 주류 진영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2위권 주자들이 군웅할거 양상을 보이면서 주류 측의 후보 단일화 작업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대를 모았던 루비오 의원은 6일 8차 TV토론에서 경험부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바람에 이번에 5위로 추락하며 최대 패배자로 전락했다.
합리적 보수 성향의 케이식 주지사는 '깜짝 2위'에 올랐지만 뉴햄프셔에서만 강세를 보인 터라 트럼프의 대항마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공화당 극우세력인 '티파티'의 총아이자 당내 이단아인 크루즈 상원의원도 이번에 3위에 그치며 기세가 꺾인 상황이다. 경선포기 압력에 시달리던 부시 전 플로리다주지사는 부시 가문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4위에 오르며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