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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와 BMW·메르세데스벤츠 등 독일 자동차 업체는 지난해 말 노키아의 지도사업 '히어(HERE)'를 25억5,000만유로(약 3조4,500억원)에 인수했다. 3개사는 '히어'를 인수해 자율주행차 개발에 필요한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독일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는 경쟁자이지만 공통의 이익 앞에서는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지난해 7월 일본의 3대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와 혼다·닛산은 수소차 충전소 설치를 위한 동맹을 맺었다. 3개사가 오는 2020년까지 수소충전소 운영비 50억~60억엔을 공동으로 분담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에너지 업체도 동참했다. 충전소가 있어야 수소차가 팔릴 수 있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본 셈이다.
융합은 반드시 둘이 합쳐지지 않아도 이뤄질 수 있다. 여러 회사가 하나로 뭉쳐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기업동맹'이다.
기업동맹은 자동차 업계에서 흔하다.
지난 2010년에는 다임러와 르노·닛산이 친환경차와 소형차를 공동 개발하겠다는 전략적 제휴 계획을 발표했고 폭스바겐은 스즈키 등과 연합을 맺었다.
최근에는 기업동맹이 정보기술(IT) 업체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스마트카가 전면에 부상하면서 구글과 애플 진영을 중심으로 한 이합집산도 활발하다. 1차적으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의 카플레이 같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이지만 전기차와 스마트카 개발과정에서 IT 업체와 자동차 기업 간 협업(동맹)은 더 확산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향후 산업의 중심이 스마트카와 스마트홈·로봇 같은 융합 산업으로 옮겨갈 것임을 감안하면 국내 주요 기업도 국내외 각 분야 업체와 협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스마트홈 같은 분야에서 기술표준이 정해질 때 기업동맹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1970년대 VCR 방식을 놓고 마쓰시타가 VHS 방식에 히타치와 미국의 RCA를 끌어들여 소니의 베타맥스 방식을 압도한 적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 간 전략적 제휴를 활용하면 비용을 절감하고 제휴 기업의 노하우와 장점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기업의 노선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제휴"라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 기업도 해외 기업과의 제휴나 기업동맹을 이용하고 있다.
LG전자는 폭스바겐과 함께 차량과 스마트홈을 연결하는 새로운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다. 삼성도 BMW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현대자동차 역시 구글·애플 양사와의 협업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경우 기업 간 전략적 제휴나 기업동맹에 다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내 기업 간 협업을 꺼린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해외 다른 전자 업체와 협력을 하더라도 LG전자와는 잘 하지 않고 현대자동차도 국내 기업보다는 국외 업체와의 협력에 주력한다는 얘기다. 실제 현대차만 해도 계열사인 기아자동차와 자동차 차체 공유 같은 협력을 하고 있을 뿐 주요 글로벌 업체와의 제휴는 거의 없는 편이다. 수소차 분야에서도 현대차는 사실상 독자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 자동차 업체가 하나로 뭉칠 때 현대차는 이렇다 할 협력 대상이 없다는 뜻이다.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내 기업 간 제휴를 다소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 기업들이 힘을 합쳐 고품질의 스마트카나 전기자동차를 만들면 국내에 미칠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