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62> 홍용표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에서)


심보선 시인은 자신의 시(詩)에서 좌절과 열패감, 그리고 허무함으로 가득 찬 한 남자의 빈 가슴을 이야기한다. 그가 슬픔을 느끼지 않는 십오 초는 오히려 그 외의 우울하고 절망적인 시간을 더욱 애처롭게 만든다. 어색한 정적이 흐르는 시간 동안, 작중 화자는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우수(憂愁)를 느끼고, 결국 자신도 그들과 함께 스러져 갈 운명임을 상기하며 삶을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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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며 홍용표 장관이 겹쳤다. 그가 통일부 장관으로 부임한 이래 좀처럼 훌륭한 의사결정자의 면모를 보여줄 만한 기회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8월 북한은 준전시사태를 수습해 놓고 대화 채널을 열면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을 공식 협상 상대로 지목했다. 통일부가 우리네 외교 안보 정책에서 ‘주류’가 아니라 여겼기 때문일까. 어디 그뿐인가. 북한이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사이 미국이 B-52 폭격기를 한반도로 들여오고 핵잠수함이 훈련을 전개하도록 결정되는 과정에서도 홍 장관의 존재는 부각되지 못했다. 군사 분야의 주무부서는 국방부와 국가안보실이니까. 홍용표 장관은 작년 인사청문회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견해를 묻는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국익 차원에서 고려해야 하지만, 개인 자격으로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유보적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수동적인 자세 혹은 신중한 자세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심보선의 시 중간에는 이런 우울한 구절도 있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홍 장관의 입장도 그런 것 같다. 개성공단에서 창출된 재원의 상당수가 북한 노동당 서기실로 흘러들어 간다고 이야기해 놓고, 정작 해명을 요구하는 자리에서는 오해를 일으켜 미안하다고 발을 뺐다. 일국의 장관이 방송 출연까지 하면서 개성공단 임금 등의 현금이 대량살상무기 용도로 사용된다는 엄청난 말을 해놓고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자 정작 책임지지 못했다. 그 내용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장관의 태도는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일련의 해프닝은 우울한 통일부 장관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헤쳐 보려는 시도였을까. 우리 모두가 그렇듯 언젠가 ‘사라질 운명’임을 자각한 데서 나온 마지막 몸부림이었을까. 지금 홍 장관에게 하루 중 슬픔이 없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얼마가 됐든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되레 슬픔은 더 짙고 공허함은 더 깊어지지 않으려나.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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