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미국 시리즈 마지막 편입니다. 격주 연재로 6주나 걸렸네요. 미국에서 모터사이클 렌트하는 법과 도로 달리는 법을 다룬 1, 2편(두유바이크 14회, 15회)은 복습하셨나요? 마지막 편에선 본격적으로 트라이엄프 본네빌에 대해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렌트했던 본네빌은 흰색이었는데, 몇 년식이었는지는 깜빡하고 못 물어봤습니다. 본네빌이 매년 크게 바뀌는 모델은 아니라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앞모습은 이렇습니다. 전형적인 클래식 바이크죠.
옆모습입니다. 트라이엄프 로고가 약간, 2%쯤 모자란 듯하지만 전체적으로 예쁘니 봐 줍시다.
계기판은 단촐하지만 디지털적인 요소도 적용했습니다. 속도계는 다행히 마일과 ㎞ 모두 표시돼 있었습니다. 마일로 표시돼 있는 미국 도로의 속도제한에 맞추기도, ㎞로만 속도를 알아 온 제가 현재 속도를 확인하기에도 편했습니다. 그밖에는 표시등 네 종류입니다. 중립·방향 표시등과 상·하향등 표시, 주유경고등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RPM미터가 없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미국에서 RPM미터가 없다는 사실도 모른 채 신나게 타다가 방금 사진을 보고서야 깨달았다는 겁니다.
평소 바이크를 타면서 RPM 미터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없다 보니 아예 몰랐던 겁니다. 그냥 왠지 이때다 싶으면 변속했거든요. 찾아 보니 해외의 많은 본네빌 라이더들이 옳다구나 지금이다!!는 감으로 변속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RPM미터가 없으면 답답해 미치겠다는 분들을 위한 본네빌용 RPM미터 키트도 꽤 팔리는 듯 합니다.
키박스는 특이하게 왼쪽 아래에 요렇게 달려 있습니다. 또 특이한 점 하나는 키박스에 열쇠를 꽂고 시동을 돌리기 전에, 또 다른 열쇠로 오른쪽의 핸들락을 열어야 합니다. 처음엔 복잡해보였는데 금방 적응이 되더군요.
그 다음에 왼쪽 키박스에서 시동을 겁니다. 그래서 열쇠가 두 개입니다.
처음 시동을 걸고 감동받았습니다. 정말 제 취향에 맞는 배기음에, 진동은 적었거든요. 낮고 묵직한 배기음인데 할리처럼 크고 웅장하진 않습니다. 공회전 동영상을 찍었어야 하는데 제가 찍었겠습니까? 당연히 안 찍어서 대신 영국인으로 추정되는 말론 형님의 유튜브 동영상을 대신 올립니다. 사실 남들 생각은 어떤가 하고 검색하다 우연히 본 영상인데, 개인이 만든 것 치곤 알기 쉽고 알차고 심지어 재밌습니다.
유머 좀 아는 말론 형의 본네빌 탐구기 |
이쯤에서 제원표 한 번 볼까요. 2014년식을 기준으로 865cc, 최대출력은 68마력/7,500rpm, 최대토크는 6.93㎏·m/5,800rpm입니다. 제가 써놓고도 뭔 말인가 싶지만 실제 타 본 느낌을 보태 설명드리자면, 낮은 RPM에서도 안정적으로 높은 속도를 낼뿐더러 힘도 좋습니다. RPM미터가 안 달려 있으니 낮은 RPM인지 높은 RPM인지도 확인할 길이 없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쯤 되니 그냥 좀 하나 달아주면 안되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본네빌 T100에는 달려 있습니다 .
최고 속도는 쥐어짜면 시속 200㎞까지도 나온다고 합니다. 전 시속 140㎞에서 공기 저항이 너무 세 포기했지만, 140㎞에서도 아직 여유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공기 저항을 최소화한 레플리카가 아닌 만큼 최고 시속이 200㎞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치 않을 것 같습니다.
클래식 바이크 중에선 보기 드문 인젝션(전자식) 엔진입니다. 캬브레이터(기계식) 엔진보다 시동도 잘 걸리고 크게 돌봐줄 필요가 없지만 한 번 고장나면 고치기도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연비는 57MPG, 환산해보면 리터당 24㎞라고 합니다.
무게는 225㎏, 그보다 더 중요한 시트고는 740㎜입니다. 키 165㎝인 저도 약간 까치발이나마 안정적으로 탔습니다. 기어 변속이 울프와 똑 같은 5단 리턴 방식이라 편했습니다. 어떤 바이크는 초기에 중립 넣는 데 애를 먹이지만, 본네빌은 편했습니다. 클러치는 딱 손 아프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게 맞춰져 있습니다.
진동이 적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두툼한 시트까지 더해져 승차감이 훌륭합니다. 우렁찬 배기음과 진동을 원하는 상남자 라이더들도 많지만, 전 편한 게 좋습니다. 디젤 자동차도 힘 좋아서 좋은 것도 잠깐, 전 그냥 조용한 하이브리드 차가 좋더군요. 차도 없는 주제에 한 마디 굳이 해봅니다.
아쉽게도 트라이엄프는 국내 정식 수입이 안 됩니다. 2003년께 본사에서 정식 론칭했다가 판매량이 극히 적어 1년여 만에 철수했다고 합니다. 퇴계로의 한 모터사이클 매장에서 현재도 판매하고는 있지만, 본네빌은 없고 본네빌 T100, 스럭스턴(Thruxton), 스크램블러 등만 병행수입하는 걸로 보입니다.
시승기는 여기서 마치고, 오늘은 부록으로 미국에서 주유하는 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전 이때까지 미국에서 주유해본 적이 없었고, 주유할 일도 없을 줄 알았습니다. 울프클래식의 연비(ℓ당 약 35㎞)와 비슷하게 생각해버리는 바람에, 왕복 다섯 시간 정도면 주유소에 들리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애초에 렌트할 때 기름을 다시 채워 반납할 필요가 없는 약 3만원짜리 ‘프리 페이드 퓨얼’ 옵션까지 챙겨넣었더랬죠.
경기도 오산이었습니다.
레고랜드에 들른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세시간 가량 쭉쭉 달렸더니, 주유경고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계속 들어오는 게 아니라 들어오다 말다 해서 조금 고민됐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차도 아니고 바이크인데 벌써 기름이 다 됐나 싶었거든요.
그러다 이 바이크가 울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유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거의 셀프 주유소라던데, 한국에서도 안 가본(정말 한 번도 안 가봤습니다) 셀프 주유소에서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요. SK도 GS칼텍스도 아닌 쉐브론 주유소를 찾아 소심하게 기어들어갑니다. LA 인근의 라구나 비치에 위치한 셀프주유소입니다.
일단 주유기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오일탱크의 뚜껑(다행히 열쇠구멍이고 뭐고 없이 그냥 주스통처럼 돌리면 열리는, 약간 허접한 퀄리티)을 열고 주유기를 바라봅니다. 조금 막막합니다.
다행히 주유기 윗쪽에 친절하게 설명이 돼 있습니다. 일단 신용카드를 넣었다 빼고, ZIP코드를 입력한 후, 아래 세 종류의 휘발유 중 한 가지를 골라서 알아서 잘 주유하랍니다. 세 종류의 기름은 옥탄가에 따라 수프림, 플러스, 레귤러로 나뉘는데 전 그냥 레귤러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우편번호인 ZIP코드가 문제입니다. 미국에서 발행한 신용카드라면 명세서가 배달되는 주소의 ZIP코드가 있겠지만, 전 한국에서 카드를 만들었고 미국 주소도 당연히 없습니다. 급히 네이버를 검색해 보니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 중 ZIP코드가 00000으로 설정된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안 먹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최근 미국의 신형 주유기는 아예 해외 신용카드를 쓸 수 없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신용카드 사기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네요.
결국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으로 가 직원에게 물어봅니다. ZIP코드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묻자 그럼 선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이제 미국에서 주유하실 때 직원에게 ‘프리페이드 플리즈’를 외치면 됩니다. 카운터에서 결제한 금액만큼만 기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전 본네빌의 탱크 용량이 얼마인지 몰랐습니다. 4.2갤런, 환산하면 15.9리터 정도라고 이글라이더 홈페이지에 표시돼 있는데 그걸 못 봤거든요(두유바이크 14회 참조).
그래서 편의점 직원에게 다시 물어봅니다.
“난 저 바이크에 기름이 얼마나 들어가야되는지 모르는데 그럼 결제하고 남는 금액은 어떻게 되니?”
직원은 귀찮은 기색도 없이 친절하게 답해줍니다.
“응, 남는 건 나중에 다시 환불되니까 걱정 마.”
그래서 안심하고 결제한 후 다시 주유기로 돌아갑니다. 레귤러 휘발유를 선택한 후 처음으로 주유 노즐을 손에 쥐었는데, 방아쇠를 몇 번 당겨도 기름이 나오질 않는 겁니다. 또 당황했지만, 노즐은 주유기에 꽂았다 다시 꺼내서 주유했더니 이번엔 성공입니다.
그렇게 인생 첫 셀프 주유이자 미국에서의 첫 주유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LA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별 것도 아닌데 지금도 새삼 뿌듯하네요. 나중에 보니 본네빌의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고 1만400원 정도 결제됐습니다. 대략 15ℓ에 그정도 값이니 우리나라 기름값의 60%쯤 되겠네요.
이렇게 미국 시리즈를 마치…려니 좀 섭섭해서, 바이크를 반납하기 직전에 허겁지겁 들른 모터사이클&용품점 ‘델 아모(Del amo) 모터스포츠 ’ 방문기도 덧붙여 봅니다. 최대한 제 동선에서 가까운 용품점을 검색하다 찾은 곳입니다.
노을질 무렵 델 아모 매장 앞에 도착했습니다. 매장 앞 바이크 전용 주차장에 여러 종류의 바이크가 세워져 있어서 벌써부터 두근거립니다.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갔는데, 미국답게 기본적으로 매장이 큽니다. 전시된 바이크만 해도 100~200대는 돼 보입니다. 특히 산악 바이크가 멋드러지게 전시돼 있습니다.
레몬색 두카티 스크램블러도 시선을 휘어잡았습니다.
바이크 반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시간에 쫓기고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델 아모 모터스포츠는 산악 바이크와 관련 용품의 비중이 참 높습니다. 특히 용품은 산악 바이크용이 절반 이상인 듯했습니다. 이 폭스라는 오프로드 전용 브랜드 제품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예쁘긴 하지만, 울프 클래식에 저걸 쓸 수는 없는 노릇….
일반 헬멧은 30여종에 불과했습니다. 종류도 적고, 크게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어서 다행히(?) 득템에 실패했습니다. 사실 델 아모를 올 시간에 캘리포니아에서 유명하다는 인앤아웃 버거를 들를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바로 근처의 인앤아웃 버거를 갈 걸 그랬나 봅니다. 산악 바이크 매니아가 아니시라면, 다른 용품점을 검색해보시길 권합니다.
이렇게 야심찬 미국 시리즈를 마치고, 다음 회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2주 후에 만나요! /LA=유주희기자 ginger@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