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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지난 1969년 일본 오리온스 야구단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롯데홀딩스 종업원지주회를 만들었다. 인수 기업의 외국인 지분이 49%를 넘으면 야구단을 인수할 수 없다는 당시 규정에 부합하기 위해 자신의 지분을 떼어 종업원지주회가 보유하도록 한 것이다. 50여년 가까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뜻을 충실히 따른 종업원지주회는 지난해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결정할 관건으로 떠올랐다. 한일 롯데를 지배하는 롯데홀딩스 지분 27.8%(의결권 기준 31.1%)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19일 종업원지주회를 정면 겨냥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롯데홀딩스의 10년 차, 과장급 이상 직원 130여명으로 구성된 종업원지주회가 신동주 전 부회장 편에 설 경우 신동주 전 부회장은 롯데홀딩스 지분 60% 이상을 우호 지분으로 확보하게 된다. 일본 롯데를 지배하는 것은 물론 롯데홀딩스에서 호텔롯데로 이어지는 한국 롯데그룹 지배구조까지 장악할 수 있다.
종업원지주회 회원들과 일본 롯데 직원들의 입장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의 제안은 커다란 금전적 이익을 의미한다. 현재 종업원지주회 회원들은 롯데홀딩스의 주식을 사서 보유하고 있다가 퇴사할 때는 구입가격에 팔아야 했다. 연 10%가량의 배당금 외에는 혜택이 없었다.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주식보장제도'를 통해 종업원지주회가 가진 120만주를 기존 지주회 회원(인당 1,000주)과 지주회 회원 이외의 관리직·주요직 직원(400주), 일본 롯데의 일반 직원(200주), 일본 롯데의 방계 회사 직원들(20주)에게 재분배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에 따르면 향후 롯데홀딩스 상장을 가정했을 때 주당 가치는 25만엔, 우리나라 돈으로 270만원 정도다. 기존 지주회 회원이라면 27억원가량의 지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이 같은 방식으로 종업원지주회를 해산시키는 대신 롯데홀딩스 상장을 통한 한일 롯데그룹의 투명성 강화와 글로벌 기업으로의 육성, 2조원 규모의 한일 롯데 직원들을 위한 복리후생 강화까지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민유성 나무코프 회장(전 산업은행 총재)은 이날 별도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롯데 직원들에게 당근이 아니라 비전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종업원지주회를 해산하고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금전적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한일 롯데 경영 전략을 제시하고 동의를 구하기 위한 제안이라는 이야기다.
종업원지주회가 신동주 전 부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오는 4·5월께 일본에서 열릴 롯데홀딩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확인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분 1.6%를 보유한 개인 주주 자격으로 롯데홀딩스의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청구한 상태다. 종업원지주회가 신동주 전 부회장을 위해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롯데홀딩스의 현 이사진을 해임하고 신동주 전 부회장의 직위 복귀를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이후 종업원지주회가 자체 규약을 변경, 주식보장제도대로 지분을 재배분하고 지주회 자체를 해산하도록 한다는 것이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시나리오다. 이후 롯데홀딩스의 나머지 지분을 갖고 있는 임원지주회(의결권 기준 6.7%), 공영회(15.6) 등의 해산도 추진할 계획이다. 임원지주회는 롯데홀딩스 임원, 공영회는 ㈜패밀리·롯데그린서비스 등 일본 롯데 관계사로 구성돼 있다.
이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최후의 승부수'지만 한국 롯데 측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고 재원 마련 방법에 대한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종업원지주회는 이미 지난해 세 차례의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회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한국 롯데의 한 관계자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복권 당첨을 약속하는 것과도 같은 이야기다. 한국은행 총재가 되면 한국은행 창고 돈을 직원들한테 나눠주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2조원 출연 약속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공허한 약속"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롯데 측은 특히 "종업원 지주회가 신동빈 회장을 지지하는 것은 롯데그룹의 미래 성장에 대한 비전을 보여줬기 때문"이라며 "비전은 수십억의 현금 유혹보다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롯데 측은 신동빈 회장을 홀딩스 이사에서 해임하는 안건이 임시 주총에 올려지더라도 종업원지주회(27.8%)뿐 아니라 임원지주회(6%), 관계사(13.9%) 등의 과반 지지를 얻어 다시 신동빈 회장이 승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