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30대 초반의 학자가 유명 병원의 경영자과정에 강연자로 초대되었다고 한다. 그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소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저술 활동과 기고 활동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전통적인 유교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소년등과(少年登科)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사의 나이가 어리니 청중들이 그를 얕잡아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메시지로부터 지적 자극을 받으려는 진정성, 집중력 등이 돋보였다고 한다.
강연이 끝나고 그는 병원장의 집무실에 초대되어 차를 마시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이때 병원장이 평소 고민을 그에게 이야기했단다. “우리 조직에는 정말 사람들의 불만이 많습니다. 특히 젊은 조직 구성원들의 불만이 원로 세대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겠습니까?” 그러자 그 학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 ‘블라인드’(blind) 앱을 까시고, 그 서비스를 한번 이용해 보시면, 젊은이들이 자기 조직에 대해 어떻게 평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단 그들의 호흡을 따라가면서 불만을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겁니다.” 그러자 그 병원장은 무릎을 탁 치고 다음부터 그 앱을 꼭 이용해 보겠노라고 이야기했단다.
리더들은 젊은 직원들이 털어놓는 불만을 좀처럼 귀 담아 듣는 게 힘들다. 그러려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불만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최말단에 있는 20~30대 직원의 목소리를 ‘배고프지 않은 세대의 감정 토로’로 해석하기도 하고. ‘우리 때는 정말 고생하면서 일했는데,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되다 보니 나약해졌겠거니’ 하면서 젊은이들의 고민을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반면 젊은 외부 강사의 강연 내용은 귀담아 듣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조직을 바꾸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사인까지 보낸다.
내부 구성원의 목소리는 경청하지 않으면서 외부 강연자의 목소리엔 귀 기울이며 한 자라도 더 적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조직 리더의 모습은 분명 아이로니컬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경영진 앞에서 ‘이래서는 안된다’고 직언할 수 있겠는가.
바꿀 수 없는 현실이라면 이용해보면 어떨까. 우리 조직들의 ‘민낯’을 철저하게 가려주고, 모니터링해 줄 수 있도록 일류 강사 시장을 육성하는 게 해결의 실마리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무늬만 인문학과 자기 관리를 외치는 인기 강사들이 아니라 조직의 모습을 제대로 객관화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강연하는 풍토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다. 다만 전문강연자의 단가가 비싼 편인 것이 문제다. 한두 시간 강연에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에까지 이른다니 말이다. 강연료가 아깝지 않으려면 비용 이상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물론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내부의 목소리를 경청하게끔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