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한이란 경제컨퍼런스 지상 중계

이란 경제제재 해제는 韓 기업에 기회이자 위기

코리언드림팀 구성해야 세계 시장서 경쟁력 확보 가능

가전 자동차는 시장점유율 하락 불가피... 전체 파이 키우는 방안 모색해야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24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 현지에서 개최한 ‘한·이란 경제협력 컨퍼런스’에 참석한 기업인들은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해제가 한국에 커다란 기회인 동시에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기회 측면에서는 이란의 무궁무진한 성장 잠재력이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이란은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교통로인데다 인구가 8,000만명에 이르고 인구의 60%가 30대 이하일 정도로 젊은 인구 구조를 자랑한다.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이란의 원유 매장량은 약 1,540억달러 추산돼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러시아에 이은 세계 2위다.

5년 이상 중단됐던 각종 도로, 철도, 항만, 플랜트 공사 등도 줄줄이 입찰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모두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들이다.

반면 현재 우리가 장악한 일부 제품에서 1등의 위치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삼성, LG와 현대 기아차는 각각 이란 가전 및 자동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 유럽, 일본 기업들이 줄줄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한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날 컨퍼런스에 토론자로 참석한 조태익 주이란 한국대사관 공사와 김승욱 코트라 테헤란무역관장, 백태준 수출입은행 소장, 곽민수 대우인터내셔널 지사장, 김관성 SK네트웍스 지사장, 김경수 현대건설 지사장, 장진웅 LG전자 부장 등 이란 전문가들은 “컨퍼런스를 통해 제재 완화 이후 전략을 다시 한 번 가다듬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날 컨퍼런스를 지상 중계한다.

-이란 경제 제재 완화 이후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현지에서 피부로 느끼는 실제 상황이 궁금하다.

▲조태익 공사= 현재 이란은 경제, 정치 양 측면에서 중요한 갈림길에 들어서 있다. 지난 1월 16일 제재가 풀렸고 2월 26일에는 총선이 열린다. 다만 이란에서는 헌법수호위원회가 입후보자들을 사전 심사하기 때문에 당장 급진 개혁파들이 당장 의회를 장악할 가능성은 낮다. 현 이란 정부 역시 적극적인 개혁 대신 민생 경제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변동성이 크지 않은 셈이다.

경제적인 면을 보면 원유 가격 변동이 중요하다. 이란 정부가 석유 및 가스 수입에서 재원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원유 가격이 떨어지고 있어 이란 정부 입장에서도 각종 투자 재원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이란 경제가 안정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경수 지사장= 이란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경제 제재 완화에 대한 기대감 속에 다양한 투자 정책을 내놨다. 철도, 도로, 항만, 공항, 신도시 계획 등이 쏟아지고 있다. 향후 1년간 이란 건설 시장 규모가 5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하지만 이란 정부가 이런 프로젝트를 모두 진행할 자금이 없어 공사 착공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장진웅 부장= 사실 작년에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 여건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난 2012년부터 경제 제재의 수위가 높아져 구조적으로 소비 상황이 나빠져 왔다. LG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딜러들 중에도 사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2가지로 볼 수 있는데 당장 서민들 주머니에 돈이 없다. 설령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추후 다양한 브랜드가 이란에 진입해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내구재 소비를 미루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김관성 지사장= 이란 정부가 기대하는 오일 머니 유입 시기가 불확실 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오일머니가 순환을 거쳐 소비진작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구매력 회복이 되는 시기는 올해 연말께로 예상하고 있다.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 이란 정부가 관세를 올려 수입을 억제하는 식의 정책을 쓸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란 시장이 열리면서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가 이란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이란 정부는 시장 진입의 대가로 기업들의 투자를 요구한다. 이란 정부의 압박이 어느 정도 수준인가.

▲장진웅 부장= LG전자는 현재 부품을 수입해 현지 거래선 공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각종 가전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가전 완제품은 관세가 80~100%에 달하지만 부품은 한자리 수여서 가능한 구조다.

하지만 제재 완화 이후 이란 정부는 부품까지도 현지에서 생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부품 공장 설립도 검토하고 있지만 이런 투자에 대한 유인 대책은 특별히 없는 실정이다. 아직은 정책의 불확실성이 크다.

▲김경수 지사장= 이란 발주처들은 설계구매시공(EPC)에 더해 금융(Finance)까지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기업을 찾는다. 일부 민영화 기업에서는 월별로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고 공사 완공 후 6개월 뒤에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내거는 곳도 있다. 이런 구조가 되면 개별 기업에서 소화하기가 어렵다. 500억 달러 투자를 선언한 중국처럼 정부 간 거래(G2G) 차원에서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코리안 드림팀’을 꾸려봤으면 좋겠다.

▲김관성 지사장= 정부와 금융권, 건설업계, 해운업계까지 총망라한 드림팀을 꾸리고 유기적으로 협력하면서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필요하다면 이 드림팀이 외자도 유치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정부의 선도적인 역할이 중요하다.

▲김승욱 관장= 정부 차원에서 수주지원센터나 해외진출센터 같은 지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법 등 여러 측면에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기 어려운 점도 있기 때문에 드림팀의 주체는 민간 기업이 되야 할 것 같다.

▲김관성 지사장= 이 지점에서 정부와 민간의 괴리가 나타난다. 민간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모두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민간 기업끼리 리스크를 헤지(회피)하는 방안도 있지만 법제도적 뒷받침이 없으면 한계가 분명하다.


▲김경수 지사장= 분명한 점은 당장 이란 정부에 충분한 자금이 없다는 점이다. 모든 발주 공사가 EPCF(엔지니어링·조달·시공+파이낸싱)를 요구한다. 이때에 협상 여력은 민간 기업보다 한국전력이나 한국가스공사 같은 공기업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특정 프로젝트에 대해 공기업과 건설사, 상사 등이 지분을 나눠 투자할 수 있도록 법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또 이란 현지에서 활동하는 공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정보 공유에 나서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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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욱 관장= 코트라 차원에서 테헤란 프로젝트 수주 지원센터를 열 예정이다. 코트라가 민간 기업과 공기업 및 정부의 가교 역할을 하도록 노력하겠다.

-이란에서 코리안 드림팀이 구성된다면 우리 경제산업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정부가 이란 진출 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은 무엇이 마련되고 있는가.

▲조태익 공사= 오는 2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이란 정부의 경제공동위원회를 계기로 협력을 틀을 다질 계획이다. 운전면허를 상호 인정하고 복수 비자를 인정해 편의를 제공하는 등 협력 분위기를 조성할 예정이다.

또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대학생 교류활동을 등을 통해 한국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려고 한다. 이제 이란 정부는 단순 상품 판매가 아닌 직접투자, 공동 마케팅 등을 원한다. 기업들이 이런 수준 높은 협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백태준 소장= 이란 정부가 오랜 기간 경제 제재를 겪으면서 재정에 부담이 커졌다. 해외 동결 자산이 있다고 하지만 그 중 얼마가 일시에 들어올지 알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각국에 투자 및 지원을 요구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정부도 인프라 펀드나 선박펀드 등을 통해 다양한 지원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중국이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정부가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출입은행은 이번에 ‘프레임워크 어그리먼트(FA·Framework Agreement)’를 80억 유로(약 11조원)로 상향키로 했다. 한국과 거래하는 기업에 현지 은행이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할 수 있도록 돕는 전대금융도 1억유로 규모에서 현지 은행 2곳과 협의하고 있다.

특히 선박은 현지 해운사에 바로 지원할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검토해 우리 중공업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도록 하겠다.

-건설, 플랜트 분야는 수주가 늘 수 있어 기회이지만 가전, 자동차 분야는 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향후 전망은 어떻게 보는가.

▲장진웅 부장= 이란 사람들은 유럽에 대한 동경이 있다. 최근 독일 기업을 중심으로 공격적으로 이란에 매장을 여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렇게 경쟁이 확대되면 현재 70%가 넘는 한국 가전제품의 시장 점유율은 당연히 낮아질 것으로 본다. 이익률도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점유율이 낮아지더라도 매출을 확대시켜 파이를 키우는 게 기본 목표다.

▲김승욱 관장= 한국 가전업체는 제재 기간동안 이란에서 위탁 생산도 했고 유통망 관리도 철저히 했기 때문에 파이가 점점 커지도록 유도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지켜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관성 지사장= 자동차 업계는 경쟁이 매우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 투자를 동반한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는 점이 특히 눈에 띈다. 푸조, 폭스바겐, 르노, 스즈끼, 미츠비시 등이 앞에서 뛰고 있다.

그런데 수입차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현대기아차는 투자에 소극적이다. 자칫 시장 선점을 내놓고도 향후 경쟁에서 밀리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현재 이란에 진출한 중국 자동차 업체만 12곳에 달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은 중국과 유럽 사이에 끼어 있는 신세다. 이란 현지 기업과 윈윈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조태익 공사= 한국 자동차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좋다. 시장 점유율이 증명하는 부분이다. 모든 투자는 리스크가 따르는만큼 우리 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야 한다.

-이란 시장에 대해 대기업 뿐 아니라 중견 중소 기업들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유망 사업 분야는 어떤 게 있다고 보는가.

▲김승욱 관장= 이란이라고 해서 특별히 유망 사업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기업들이 이란에서도 성공할수 것으로 본다. 제재 해제는 사실 진정한 경쟁의 시작이다. 막연한 기대감은 금물이다. 철저한 위험 관리 품질 평가, 마케팅 전략 수립, 파트너 선정 등 모든 요인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의료장비처럼 우리 제품에 경쟁력이 없는 분야는 이란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이란에서 몇 년 전 한국 업체들이 벌였던 출혈 과다 경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경수 지사장= 현재 이란 발주 공사는 파이낸싱이 기본이라 당분간 한국 업체간 과당경쟁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최근에는 건설사 내부 심의가 더욱 강화돼 실제 입찰보다 내부 통과가 더 어렵다고 할 정도다.

▲조태익 공사= 발주처들이 입찰 정보까지 흘려가며 과당 경쟁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한국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피해야 리스크를 나누고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정리= 서일범(테헤란)·구경우기자 squiz@sed.co.kr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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