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설립 이래 국내 유일의 화학분야 국책연구기관으로서 화학강국 실현에 매진해온 한국화학연구원이 올해로 개원 40주년을 맞았다. 이규호 원장은 화학연이 올해 또 한 번의 퀀텀 점프를 이룰 수 있도록 국가 화학산업의 지형을 바꿔놓을 대형 원천기술의 개발에 역점을 두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그 일환으로 대표 연구분야를 발굴,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수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Q. 창립 40주년을 맞은 소회가 남다를 듯 합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지난 40년간 국내 화학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해왔습니다. 국내 최초의 산소계 표백제 ‘옥시크린’의 개발이나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고부가가치 정밀화학 원료 ‘폴리부텐’의 국산화 등 국민 생활을 풍요롭게 할 원천기술 개발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우리나라 화학산업이 규모 면에서 2014년 기준 세계 5위를 달성할 만큼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화학연의 역할이 결코 적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올해는 연구원이 걸어온 4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현재의 위치를 가늠하며, 미래에 나아가야할 발전 방향과 공동 비전을 수립해야 합니다. 40년사 발간을 비롯해 글로벌 포럼 개최, 장기 비전 공유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Q. 40년 전과 비교해 연구환경을 둘러싼 대내외적 요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전 구성원들의 역량을 집중해 다시 한번 도약이 절실한 시기가 왔습니다. 40주년을 계기로 올해를 그런 변화와 도약의 기회로 삼을 생각입니다.
Q. 국내 화학산업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 십니까?
화학산업은 2014년 기준 수출 856억 달러, 수입 598억 달러를 기록하며 국가 무역의 13%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 10대 주력산업 중 2위를 기록할 만큼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핵심 기반산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유가 기조와 북미지역의 셰일가스 혁명, 중국 저가 석탄화학의 급성장, 그리고 중동의 공격적 화학산업 투자 등 세계 화학 산업의 지형도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파리 기후변화 협약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수립과 연구개발이 절실하고,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시행으로 업 계의 부담도 커졌습니다. 위기라는 평가를 헛된 말로 치부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Q. 그만큼 화학연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동감입니다. 이런 변화와 위기를 극복하려면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할 선제적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화학연은 이미 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으로 정밀화학 산업 육성을 위한 발전전략을 수립했습니다.
국내 정밀화학 기업들은 신성장 아이템 발굴 여력 부족에 따른 대기업 종속과 그로 인한 저부가가치 범용 제품 생산으로 영세한 기업구조가 지속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습니다. 우수 인재의 중소기업 기피도 이에 기인한 바 큽니다. 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정밀화학 산업의 신성장 아이템을 발굴, 집중적으로 지원 한다면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세계라는 무대를 호령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화학연은 향후 각각의 신성장 아이템별로 세부적인 연구개발 과제를 추진함으로써 정 밀화학 산업의 선순환 구조 정착과 산업생태 계의 활성화를 도모하려 합니다. 특히 대전의 화학연 본원과 울산 그린정밀화학연구센터 및 바이오화학실용화센터가 연계해 기술개발 과 사업화에서 실제적 성과를 내도록 역량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Q. 그동안 추진해온 기술사업화와 중소기업 지원사업의 성과는 어떠합니까?
화학연은 미래 고부가가치 화학제품과 수요 기술, 신시장 창출 등과 관련된 특허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기술이전과 사업화를 위한 국내외 마케팅을 지속 강화해 왔습니다.
특히 특허는 동료평가(peer-review)를 활용 하고 지적재산권(IP) 전문가가 추가 리뷰를 진행하는 다단계 심층 심사제도를 도입, 질적 향상을 꾀했습니다. 기술이전의 경우 국내 산업 경쟁력 유지를 목표로 한 중소기업 지원형 기술이전과 신산업 창출을 위한 중견·대기업 지향적 대형 원천기술 이전으로 구분해 마케팅을 추진 중입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전체적 특허 품질의 강화가 나타났고, 총 계약액 10억원 이상의 대형 기술이전 성과들도 속속 도출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해외기업과 기관들의 연구의뢰도 늘어나 화학연의 위상 강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Q. ‘디딤돌 기반구축 사업’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도 높은 것으로 압니다.
유망 중소·중견기업의 부설연구소를 화학연 내에 입주시켜 연구개발에서 사업화까지 기술혁신 전주기를 집중 지원하는 프로그램입 니다. 2013년 출연연 중 최초로 화학연이 도입 했는데 지금까지 대전 2개사, 울산 5개사의 입주가 이뤄졌고 2017년까지 총 35개 기업의 부 설연구소를 입주시킬 계획입니다. 기술기획과 연구개발, 시험평가, 특허취득, 상용화, 인재 육성 등 모든 단계를 근거리에서 밀착 지원해 10개사의 글로벌 히든 챔피언을 육성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입니다.
이와 관련 올해에는 중소·중견기업의 부 설연구소를 더욱 안정적으로 지원할 인프라 와 입주공간 확보를 위해 정문 옆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디딤돌 플라자’를 개소하고 7연구동도 리모델링할 예정입니다.
덧붙여 62개 기업과 멤버십을 체결, 화학 연 멘토그룹과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1연구그룹 1사 멘토링 제도도 운영 중입니다.
Q. 지난해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꼽는 다면 무엇입니까?
작년의 경우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 대비 저렴한 제조단가로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태양전지의 효율을 실리콘 태양전지 수준인 20.1%까지 끌어 올릴 신공정 기술을 개발한 바 있습니다. 결함이 적고, 결정성이 우수한 화학물질을 용액공정에서 대규모로 연속 생산할 수 있다 는 게 장점입니다.
다국적 엔지니어링 기업인 미국 케이비알 과 석유화학 촉매공정 기술의 상용화 연구에 관한 공동연구계약을 체결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성과로 기억됩니다. 수입에 의존해왔던 공정을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결과라 판단합니다. 공동연구를 통해 더 우수한 촉매를 개발, 지금보다 적은 비용과 에너지로 첨단산업의 기초원료인 올레핀 생산의 길을 열어젖힐 것입니다.
또한 태양광과 이산화탄소(CO2), 효소를 활용한 고부가가치 화합물 제조기술을 연구 중에 있습니다. 원료인 CO2와 그에 합당한 효소만 넣어주면 원하는 화합물의 선택적 생산이 가능한 혁신적 시스템입니다. 향후 상용화가 이뤄지면 기후변화와 자원 문제 해결에 상당한 기여가 예상됩니다.
이외에 고품질 그래핀 복합소재 합성·응 용 기술과 대장암 치료제 후보물질 개발이 각 각 2015 국가우수연구성과 100선, 출연연 10대 연구성과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Q. 올해 중점 추진할 연구개발 분야를 귀 띔해 주신다면
국가 화학산업의 지형을 바꿔놓을 대형 원천 기술 개발을 목표로 대표 연구분야를 발굴, 전략적으로 집중 육성하는 플래그십 프로젝 트를 수행할 계획입니다. 그 첫 번째 과제로 ‘탄소자원화 융·복합 기술’이 선정된 상태입니 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전문적이고 특성화된 연구개발을 이끌 임무수행형 조직으로의 조직 개편을 마쳤습니다.
더불어 정밀화학 고부가가치 기술과 바이오화학 분야 육성을 위해 울산의 두 센터를 활용, 지역산업 밀착형 실용화 기술개발과 사 업화를 추진할 예정입니다. 또 탁월성과 실효성, 개방성에 근간한 창의적 융합·협력연구를 선도해나갈 생각입니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연 구회의 지원을 받아 ‘에너지 및 화학원료 확보를 위한 대형 융합플랜트 기술 개발’ 융합연구단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Q. 융합연구단 수행사업의 기대효과가 크다고 들었습니다.
국내 에너지 문제와 화학원료 수급문제의 해결을 모토로 2014년 12월 화학공정융합연구 단(CCP)을 출범시켰습니다. 화학연이 주관하 고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선정·지원해 최대 6년간 약 6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입니다.
앞으로 핵심 기초 화학원료를 경제적·친 환경적으로 생산할 대단위 패키지 공정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 화학연이 ‘나프타 촉매 분해 기술’의 세계 최초 상용화 경험을 바탕으로 화학반응 및 분리 시스템화 기술을 담당하고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한 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이 정제 공정 기술, 복합막 제조 기술을 담당하는 등 4개 출연연과 국내 유수 화학기업들이 참여 하고 있습니다.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신산업 창출은 물론 약 16조원의 플랜트 수출과 6조원대의 수입대 체, 그리고 2,550만톤에 달하는 CO2 저감 효과가 기대됩니다.
융합연구단은 서로 다른 기관에 소속된 연구자들이 한 공간에서 연구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경쟁이 아닌 협럭과 융합의 문화가 정착돼 창의적 연구 환경 이 조성되는 성공적 사례가 되길 기대합니다.
Q. 정부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37%를 달성하기 위한 화학연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최근 기후변화 대응 전략과 화학 연구개발의 일환으로 ‘탄소자원화’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탄소자원화는 화석연료 등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와 온실가스, 천연가스 등을 산업원료 로 활용하는 기술혁신 개념입니다.
예컨대 일산화탄소(CO)나 메탄(CH4) 같은 탄소 원자 하나로 이뤄진 C1가스로 화학제품 이나 수송연료를 생산하는 기술, 태양광을 에너지원으로 CO2로 화학원료와 제품을 생산 하는 인공광합성 기술, CO2를 유용한 자원으로 전환하는 기술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런 탄소자원화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과 자원 순환, 신산업 창출을 동시에 이룰 수 있습니다.
현재 이를 체계적으로 확대·강화해나가고 자산·학·연·관 전문가들이 전략을 수립 중 입니다. 그 허브기관인 화학연은 탄소자원화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전략 수립과 정보·네트워 크 서비스 기능을 수행하면서 탄소 포집-전 환-활용 등 전주기 핵심기술 개발에 적극 참여할 계획입니다.
Q. 과학도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과학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토대로 발전해왔습니다. 때문에 세상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 탐구 정신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히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화학연에서도 최근 학생들이 화학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케미토피아’라는 서적을 발간했습니다.
연구자로서 30년간 느꼈던 소소한 삶의 기록을 남긴 저의 에세이집 ‘과학을 이끄는 나침 반’도 과학기술의 메카인 대덕연구단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미래 과학자들의 활약에 따라 우리나라와 지구, 인류의 미래가 좌우될 것입니다. 과학도를 꿈꾸는 학생들이 마음껏 잠재력을 펼칠 수 있도록 선배 과학자의 한명으로서 안정적이고 창의적인 연구환경 조성에 힘쓸 것을 약속 드립니다.
이규호 원장 프로필
학력
1975 서울대 공과대학 응용화학 학사
1977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응용화학 석사
1984 미국 아이오와대학 화학 및 재료공학 박사
경력
1984 ~ 1987 미국 신시내티대학 분리막연구센터 연구원
1987 한국한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
1993 ~ 1994 일본 물질공학연구소 초빙연구원
1996 ~ 2006 대한화학회 이사, 공업화학 분과회장
2000 ~ 2005 국가지정 분리막다기능연구실 책임자
2001 ~ 2008 한국고분자학회 이사
2002 ~ 2003 출연연 연구발전협의회장
2002 ~ 2005 한국막학회 부회장, 회장
2002 ~ 2010 고려대·연세대 객원/겸임 교수
2002 ~ 현재 사단법인 대덕클럽 부회장, 회장
2004 ~ 현재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
국제 순국수 및 응용화학연맹 위원
2013 한국 한화학연구원 전문위원
2014 ~ 현재 한국화학연구원장
2015 ~ 현재 대덕연구개발특구기관장협의회 회장
상훈
1993 일본정부 연구상
1999 대통령 표창
2001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 우수논문상
2002 대전경제과학 대상
2006 한국막학회 논문상
2008 이탈리아 정부 최고 공로 훈장
2012 한국화학연구원 공로표창
2013 과학기술훈장 도약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