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조휴정PD의 Cinessay] 사랑의 빛과 그림자

●우묵배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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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부정적 생각일까요? 뒤돌아보면,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했던 많은 행동들이 유치찬란하고 부끄럽고 어이없는 경우도 많지만 사랑에 빠져있을 때는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없습니다. 오직 그 사람 아니면 세상이 무너질 것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사랑.. 사랑이 대체 무엇이길래, 왕관도 버리고 조국도 버리고 목숨까지 버릴수있는걸까요? 하지만 평범한 우리가 겪는 사랑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마지막 남은 단무지 하나 때문에 삐지기도하고, 얼굴 위의 점 하나가 거슬리기도하며, 나보다 잘나가는 상대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합니다. 얼핏 보면 저 푸른 초원의 그림같은 집처럼 아름다운 사랑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사함과 쪼잔함, 구질구질함이 켜켜이 숨어있는겁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랑보다 더 우리를 설레게하고 위로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1990년, 장선우 감독)은 이렇게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는 사랑의 빛과 그림자를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반건달이지만 마음 약하고 정많은 배일도(박중훈), 밑바닥 생활을 두루 거친 후, 배일도의 아기를 낳으면서 어영부영 살림을 차린 새댁(유혜리), 술주정뱅이 남편에게 허구헌날 얻어맞고 살면서도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민공례(최명길) 이 세 사람은 어쩌면 평생 '뽄때나게 살아볼 일이 없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치마공장에서 재단사와 미싱사로 한 팀을 이루며 만난 배일도와 민공례. 시작은 조심스러웠으나 늘 그렇듯 '사랑'은 중간이 없죠. 모든 것을 걸게 만드는 게 사랑인지라, 두 사람은 천년만년 변하지 않는 미이라같은 사랑을 꿈꾸며 서로에게 빠집니다. 하지만, 호락호락한 새댁이 아닙니다. 동네방네 갖은 망신을 다 당하며 막을 내린 사랑은 초라하게 사그라져버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흐른 어느날,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추억의 장소인 비닐하우스에 가봅니다. 가정으로 돌아간 배일도와 달리 모든 것을 버린 민공례는 반가움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남자에게 그간의 아픔을 토해냅니다. "내가 이 곳을 몇 번이나 와봤는지 알아요? 당신을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좋아했죠, 하지만 아무 소용 없어요. 마음이란, 식으면 그뿐이데요. 이젠 사랑하지 않아요, 이젠 늦었어요!!"

여전히 하얀 양말을 신고 다소곳한 표정으로 나타난 공례의 처절한 눈물에서 초라한 사랑의 끝을 제대로 봅니다. 험하고 남루한 샛길도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라면 행복했고, 방안에 신발이 놓아진 싸구려 여인숙이 궁궐같다며 웃어주었던 착한 공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지만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불쌍하기는 이름조차 나오지않는 새댁도 마찬가지입니다. 툭하면 연탄집게로 남편을 휘어잡아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가정'은 '본처'여서가 아닌 처음 가져본 그녀만의 공간, 그녀만의 사랑이어서였을겁니다. 서럽고 거칠었을 새댁의 지난 시간이 만들어낸 그 그악스러움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친했던 사람처럼 가끔씩 배일도와 공례, 새댁의 안부가 궁금해집니다. 공례는 다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을지, 일도와 새댁은 아직 같이 살고 있는지, 우묵배미는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지…. 사랑이 그들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휴정 KBS PD (KBS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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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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