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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증권사로부터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모델포트폴리오(MP)의 대략적인 구성을 받아본 것이 지난주 말이다. 그동안 두루뭉술한 설명으로만 접했던 ISA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거의 모든 증권사가 ISA 가입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법한 수준의 자료만 공개했기 때문이다. '국내주식형 ○% 내외, 해외 채권 및 유동성 ○% 내외'라는 식으로 운용 계획을 뭉뚱그린 곳도 있었다. ISA라는 바구니에 구체적으로 어떤 펀드와 채권·파생결합증권을 담을지 적시한 증권사는 단 한 곳에 불과했다.
ISA 출시 첫날인 14일 이번에는 금융 소비자로서 증권사 창구를 찾았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각 일임형 ISA에 어떤 상품이 담기는지는 들을 수 없었다. 가입·납입을 마친 후에야 e메일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전문가가 대신 자산을 관리해준다는 것이 일임형 ISA의 취지기는 하지만 금융 소비자의 입장에선 자산을 맡기기 전 충분히 상품 내용을 들여다보고 검토할 기회를 빼앗긴 셈이다.
상품 구성뿐만이 아니었다. ISA에 직접 가입하면서 기대 수익률이나 수수료 체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첫날이라 저희도 잘 모른다"며 연신 양해를 구하는 창구 직원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창구 직원이 ISA에 투자하면 연간 어느 정도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대 수익률을 부풀리는 것은 더더욱 안될 일이다. 그렇다 해도 투자에 필요한 비용을 모른 채 가입을 권유받는 소비자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화살은 서민의 자산을 불려주겠다면서 정작 깜깜이 투자를 하게 만드는 금융 당국과 금융사들에 돌려야 할 것이다. 아무리 금융투자가 익숙지 않은 이들을 겨냥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가입자 대다수가 큰 고민 없이 ISA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더 공부하고 조사할 여지는 만들어줘야 옳다. 금융 소비자들이 요행을 바라고 투자하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지식을 갖추고 논리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 금융 당국과 금융사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첫날 가입 현황을 하루 만에 공개한 금융 당국은 출발이 순조로웠다고 자평하는 모양이다. 이날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ISA 가입 행사에서 "여러 금융회사의 상품 구성과 수수료를 꼼꼼히 비교하고 가입해달라"고 한 당부가 공허하기만 하다.
증권부=유주희기자 ginger@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