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직원 서랍까지 뒤지는 회사


바둑 한 판이 한국 사회에 인공지능(AI) 신드롬을 몰고 왔다. 하지만 장밋빛 유토피아보다 회색빛의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에 대한 걱정도 많다. AI 로봇이 인간 사회를 지배하고 내 일자리까지 넘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우리는 왜 지능을 가진 기계를 두려워할까. 로봇은 비록 인간처럼 일할 수 있지만 '인간성'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 그 존재 자체로 지니는 존엄과 자유의지 등의 가치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얼마 전 국내 한 대기업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이곳은 신입사원 경쟁률이 1,000대1이 넘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회사다. 이 회사가 이달 초 봄맞이 환경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사무실을 깨끗이 하고 주변을 청결하게 하자는 것이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회사는 직원들의 책상 서랍까지 검사하겠다고 나섰다. 책상 위를 점검하겠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개인의 영역인 서랍까지 검사하겠다니. 그것도 청소를 목적으로 말이다. 사장님 지시사항이라는 이 회사의 이상한 봄맞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책상에는 세 가지 이상의 색깔 볼펜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지침까지 더해졌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사장님밖에.

또 이 대기업은 매일 오전7시30분이면 사장 주재 임원 회의를 한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임원은 7시10분쯤 부문장급 회의를 한다. 부문장은 또 이를 준비하기 위해 팀장들을 7시 전에 출근시킨다. 팀장은 또 이 회의를 위해 부하 직원들을 더 이른 시간에 회사에 오도록 한다. 이 회사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직원들을 일하는 기계로만 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대기업에서 '인간'인 직원들에 대해 이 정도의 대접을 한다면 다른 우리 사회와 직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행위는 얼마나 더 많을까. 오죽하면 최근 인터넷과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모아 자살률, 산재 사망률, 남녀 임금 격차, 노인 빈곤율 등등 각종 비인간적인 50여가지 부분에서 한국이 1위를 달리고 있다는 비아냥 섞인 글이 떠돌아다니겠는가.

며칠 전에는 국내 한 항공사의 오너가 자신이 속한 회사의 조종사를 폄훼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네티즌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비행기 조종이 자동차 운전보다 쉬운데 뭘 그리 힘든 척하느냐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직원들을 인간이 아닌 그저 일하는 기계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미 한국 사회에는 지능을 갖춘 '일하는 로봇'들이 수두룩하다. 뼈와 살가죽이 입혀진 몸만 사람일 뿐이지 직장과 사회에서 사실상 기계처럼 대우받는 것과 AI 로봇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다가올 AI 세상에 대한 걱정에 앞서 실제로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 기계로 전락한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결국 AI에 대한 두려움은 어쩌면 기계 자체가 아닌 인간성이 거세된 우리 인간 사회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한영일 사회부 차장 hanu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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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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