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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비둘기파적 신호를 보내며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자 월가에서는 주요국이 비밀리에 달러 약세 유도를 합의했다는 루머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상하이에서 끝난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글로벌 경제 둔화와 금융 시장 불안을 막기 위해 '제2의 플라자 합의', 이른바 '상하이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19일 블룸버그는 "지난달 G20 회의 이후 몇 주간 중국,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일본, 영국에 이어 미국이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 엄호사격을 지속하고 있다"며 "일부 전문가들은 올해 초 금융 시장이 요동치자 주요 국가가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비밀리에 상하이 합의를 맺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주요국의 통화정책이 이 같은 시나리오의 주요 근거다.
지난달 G20 공동 선언문은 '경쟁적인 통화 가치 평가절하를 자제한다'는 기존 문구와 함께 '각국이 환율정책을 밀접하게 논의한다'는 내용을 처음으로 담았다. 10일에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추가 금리 인하는 필요 없다"고 밝혔다.
이어 12일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는 "수출 증가 목적을 위해 통화 정책이나 환율정책을 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15일 일본 중앙은행(BOJ)은 "필요할 경우 추가 금융 완화를 강구할 것"이라면서도 당장 추가적인 조치는 내놓지 않았다. 특히 16일 연준이 지난해 12월 네 차례로 제시한 연내 금리 인상 전망을 두 차례로 낮추며 '달러화 약세-다른 나라 통화 강세'를 부채질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말 이후 주요국 통화 대비 20% 이상 상승하던 달러화 가치는 G20 회의 이후 4%가량 급락했고 일본 엔화 가치는 8% 상승했다.
통상 강달러는 다른 나라의 수출 증가에 도움이 되지만 지금은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 중국 등 신흥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유출 등을 촉발해 세계 경제의 혼란 요인이 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ECB가 현행 마이너스 금리를 더 떨어뜨리면 시중은행이 수익성 악화로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BOJ도 마이너스 금리에 은퇴 생활자 등의 반발이 거세다는 게 부담이다. 미국도 강달러로 수출, 제조업이 타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핌코의 요하임 펠스 세계 경제 고문은 "외환 시장 개입이 아닌 적절한 통화정책을 통해 달러 가치를 안정시키자는 암묵적인 상하이 합의 같은 게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IG의 크리스 웨스턴 수석 시장 전략가도 "달러화를 약화시키려는 중앙은행 간 협력으로 주식과 신용 시장에서 위험이 크게 감소했다"며 "달러 약세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 가격이 각각 54%, 40%나 급등한 핵심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물론 상당수 전문가들은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루미스 세일즈의 에스티 드웩 글로벌 전략분석가는 "수년간 엄청난 달러 강세가 지속된 게 최근 약세의 이유"이라며 "과거에도 연준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달러 강세가 멈췄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공식 합의'는 아니더라도 이심전심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상하이 합의'와 같은 그랜드 플랜이 성사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도 "밀실 만남에서 G20 모두가 무언가를 하기로 동의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찰스 콜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중앙은행들이 지켜야 할 공동 합의는 없겠지만 서로 의견을 교환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