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설탕세


설탕은 십자군전쟁을 계기로 서양세계에 알려지면서 워낙 가격이 비싸다 보니 만병통치약으로까지 대접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만성적인 영양 결핍에 시달리던 터라 칼로리가 높고 희귀한 설탕의 효과를 과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비잔틴제국 황실에서는 설탕에 절인 장미꽃잎을 해열제로 처방했고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하자 설탕을 치료제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원기를 돋아주는 단맛을 좋아하기 마련인데 설탕이 워낙 중독성이 강해 한때 마약으로 불리기도 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설탕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치아가 검게 되자 사람들 앞에 나서기조차 꺼려했다고 전해진다.

설탕은 최초의 '세계 상품'이자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위신재(威信財)였다. 노예무역과 플랜테이션도 바로 설탕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강대국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1세기 이집트의 술탄은 7만㎏의 설탕으로 제단 위에 실물 크기의 나무를 만들게 하고 설탕으로 만든 사원에서 의식을 치른 후 빈민들에게 공짜로 나눠줘 자신의 권력을 과시했다고 한다. 몽골제국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동서 간의 무역상들에게 매기는 설탕세를 소금세·석탄세와 함께 가장 중시했을 정도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설탕이 이제는 비만을 부추긴다며 오히려 만병의 근원으로 지탄받는 신세다. 영국 보수당 정부가 최근 시민단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관련 제품에 10~20%의 설탕세(sugar tax)를 도입해 아동 비만 퇴치 사업에 쓰기로 결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멕시코는 일찍이 탄산음료에 설탕세를 매기고 있으며 일본 등 각국에서도 설탕세 부과를 검토하는 등 공공의 적으로 몰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설탕을 비롯한 총당류섭취량이 비만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학계의 반론도 만만찮다. 정부가 국민 건강을 핑계로 무리하게 세금을 매기는 것에 대한 반감도 크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에 좋은 식품도 많이 먹으면 나쁘다는 것쯤은 인정해야 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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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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