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전 문 전 대표는 허성무 더민주 후보와 노회찬 정의당 후보 간 창원성산 야권단일화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제가 당 대표를 계속했더라도 김종인 대표를 상위 순번으로 모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말 어려운 시기에 김 대표를 모셔왔고 당을 맡으신 후 우리 당이 빠르게 안정됐다”며 “김 대표가 비례대표에 들어가는 것은 노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문 대표의 발언이 알려진 후 김 대표 측에선 김 대표의 사퇴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한 언론에 “김 대표가 사퇴하기로 했다”고 알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김 대표 측근은 “문 대표의 발언은 본질이 벗어났다”고 문 대표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김 대표의 영입인사인 주진형 총선정책공약부단장도 페이스북에서 “오월동주, 무신불립…”이라며 “개혁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연합 시도는 막을 내릴 것인가?”라고 밝혔다. ‘셀프공천’ 논란에 대한 책임을 문 전 대표에게 돌린 것이다.
중앙위원회의 반발을 ‘그따위 대접’으로 치환한 김 대표의 고압적인 발언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김 대표가 문 전 대표에게 불만을 갖는 것도 이유가 있다는 평가에 힘이 실린다. 더민주 비례대표 논란의 핵심이 된 김 대표의 비례대표 2번 전진 배치에 대해 문 전 대표를 중심축으로 하는 당 주류가 그럴듯한 포장을 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김 대표의 비례대표 2번 순번이 알려진 직후 범주류로 평가되는 현역 의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 “이해찬 전 총리는 컷오프 하고 왜 자신은 비례대표 2번에 도전하느냐”는 식의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주류의 반발을 ‘전략의 부재’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문 전 대표 측이 김 대표가 수세에 몰리는 상황을 그대로 방치 했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주 일요일에 이어 이틀째 비례대표 논란이 당을 잠식할 무렵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문 전 대표가 움직일 상황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다른 문 대표 측 관계자도 “김 대표가 2번을 못 받았다고 난리 치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열성 지지층이 김 대표의 ‘셀프공천’과 여권 인사 출신에 비례대표 부여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권 주자인 문 전 대표가 지지층을 무시하고 김 대표를 옹호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렸을 것으로 해석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앙위가 김 대표의 비례대표 명단을 뒤집은 것을 두고 김 대표와 문 전 대표 간 전쟁에서 문 전 대표가 이겼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이날 문 전 대표의 구기동행은 김 대표의 사퇴를 막아내더라도 야권에 돌아선 지지층을 되돌리기에 너무 늦었다는 평가다. 김 대표도 비례대표 논란이 일자 “벌써 표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아느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문 전 대표의 혁신안을 중앙위가 통과시킬 때 중앙위는 문 전 대표에게 몰표에 가까운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당 관계자는 “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정말로 예우하고 싶었다면 문 전 대표가 중앙위원들을 설득할 방법을 찾았어야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