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성직자의 죽음, 로메오 대주교 피살



1980년 3월 24일 밤,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 성찬 미사가 집행되던 ‘신의 섭리’ 병원 부속예배당에 난입한 괴한 4명이 M-16 자동소총을 갈겨댔다. 성배를 막 들려던 순간 총탄을 맞은 오스카 로메로(Oscar Romero) 대주교가 쓰려졌다. 급히 출동한 구급차로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이 끊긴 뒤였다. 향년 63세. 세계의 주요언론은 이를 톱뉴스로 다뤘다.*

국명 자체가 ‘구세주’라는 뜻을 갖고 있는 나라,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을 신봉하는 엘살바도르 교회의 최고지도자 로메로 대주교를 도대체 누가 죽였을까. 살인자들의 정체는 바로 밝혀지지 않고 미궁에 빠졌다. 정권을 장악한 군의 조직적 은폐 시도 탓이다. 범인들의 정체는 훗날에야 밝혀졌다. 권력의 사주를 받은 극우파 예비역 장교들의 소행. 중남미 국가들의 군인들을 교육시킨 미국 군사학교(School of Americas) 출신이어서 미국도 방조 혐의를 의심받았다.


로메로 대주교는 남미를 휩쓸던 해방신학의 신봉자였을까. 아니었다. 되레 반대다. 신학교 시절부터 모범생이었고 온건한 학자 스타일인 그는 사회 정의나 현실 비판보다는 알코올과 마약, 음란물 추방에 관심을 쏟았던 보수성향의 성직자였다. 사회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1977년 2월 대주교 서품 이후부터. 날로 심해지는 빈부 격차와 내전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무참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는 억압받는 이들 편에 섰다.**

몇몇 지주 가문과 결탁한 군사정권이 국민을 탄압하는 현실에 적극적 민권운동에 나선 그는 197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거론됐으나 군사정권에는 ‘눈엣가시’였다.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군사독재를 지원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내고,*** 암살 당하기 하루 전에는 병사들에게 ‘신의 뜻을 받들어 인간의 기본권을 말살하는 정부의 진압명령을 거부하라’고 강론해 군부의 분노를 자아냈다.****

피살 6일 뒤에 열린 장례식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파 25만명이 몰렸으나 여기에서조차 폭탄이 터져 4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로메로 대주교 피살로 본격화한 엘살바도르 내전은 1992년에야 가까스로 멈췄다.

로메로 대주교 피살 36주년. 낮은 곳의 사람을 사랑했던 그가 소망했던 두 가지 꿈 가운데 하나를 이뤘고 하나는 아직 못 이뤘다. 생전의 로메로 주교는 침대에서 선종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에 ‘그들이 나를 죽인다 해도 나는 민중 안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대로 됐다. 그를 기리는 날이면 사람들이 외친다. ‘대주교님은 우리 가운데 살아 있다.’ 프란치스코 로마 교황은 지난해 로메로 대주교를 성인 반열에 올렸다.


이루지 못한 꿈은 엘살바도르의 상황이다. 엘살바도르는 여전히 혼미하다. 나라는 작아도 1970년대 한때 중미 최대의 공업국이었다는 지위를 상실한지 오래다. 미국 달러화를 통화로 삼는 파격적인 조치에도 경제는 살아날 줄 모른다. 해외거주자들이 보내주는 송금이 경제 운용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치가 차츰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나라는 여전히 양분된 상태다. 경제불안의 원인에 대해서도 목소리가 엇갈린다. 좌파는 독재와 독점의 후유증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우파는 사회불안 탓으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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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존경할 수 있는 종교지도자의 존재가 부럽거니와 걱정도 앞선다. 우리 사회의 분열상이 갈수록 심해져 가는 판이니까…. 과거가 현재를 잡아먹고 어린 동심마저 차별에 멍든다. 초등학생들이 급우를 ‘휴거’(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거지)라며 따돌리고 젊은이들은 ‘스펙’의 노예가 되어가는 현실. 중미의 지나간 흑역사 속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보인다./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 신군부의 눈치를 보던 한국 언론들은 이를 낮은 비중으로 다뤘다. 대부분 사회면이나 국제면의 1~2단짜리 기사로 처리했다.

** 로메로 신부가 태어날 무렵부터 엘살바도르는 국토의 대부분을 소유한 14개 유력 가문의 세상이었다. 연이어 등장한 군사정권과 결탁한 토지 가문들은 농민과 노동조합을 가혹하게 탄압, 만성적인 내전 상태를 낳았다. 엘살바도르의 유력 가문 뿐 아니라 엘리트 식자층도 특권 의식에 젖어 있었다. 오세훈 변호사(당시)와 강원택·김호기·이영조 교수 등의 공동 저술한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 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엘살바도르의 젊은 농업 장관이 암살되자 그 미망인을 대주교인 로메로가 위로하는데 미망인은 자기의 아들이 언제 세례를 받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로메로 대주교는 ‘유아 영세는 한 달에 한 번 준다’고 대답하자 미망인이 재차 물었다. ‘어느 날에 오면 될까요?’. 대주교가 개인적으로 유아 영세를 주지 않으니 정해진 날에 오라고 대답했더니, 미망인이 날카롭게 되물었다. ‘우리 애보고 인디오 애들과 같이 영세를 받으란 말씀이세요?’. 이 일을 계기로 미망인은 로메로의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중략) 라틴아메리카에는 국민은 있으되 민족이 없다. 처음에는 인디오만 차별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인종이나 신분, 처지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체감의 대상이 아니다. 국적이 같으니 같은 국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이 대목은 이영조 경희대 교수가 썼다.)

*** 같은 시기에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비슷한 내용을 외신과 인터뷰해 유신 정권과 극한 갈등을 빚었다. 당시 공화당과 유정회에 의해 김 총재가 국회의원직을 제명 당한 뒤 부산 마산의 대규모 소요(부마항쟁)가 일어나고 종국에는 10.26으로 이어졌다.

**** “형제들이여, 그대들도 우리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대들은 그대들 형제인 농민을 죽이고 있습니다. 어떤 군인도 하느님의 뜻에 거스르는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대들은 양심을 되찾아 죄악으로 가득한 명령보다는 양심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울러 날마다 더한 고통을 받아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은 민중의 이름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요구하고 명령합니다. 탄압을 중지하시오!”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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