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의 장기화 속에 시장에 유동성은 풍부하지만 기업의 자금조달 통로인 회사채 시장은 여전히 ‘돈 가뭄’에 허덕이는 모습이 해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현대상선 등 부실기업 구조조정 한파가 잠복하고 있어 순탄하지 않다. 특히 4월 총선 이후 본격화할 구조조정 태풍의 강도가 시장 기류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24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월 중 기업 직접금융 조달 실적’을 보면 이 기간 발행된 회사채는 전월 대비 26.8%나 감소한 6조3,780억원에 그쳤다. 이 중 일반회사채는 전월보다 21.8% 줄어든 2조7,480억원이 발행돼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2,271억원 많은 순상환 기조로 돌아섰다. 지난 1월에는 기관투자가들이 연말 결산 후 새해 자금 집행을 재개하면서 시장이 다소 활기를 띠는 ‘연초 효과’에 회사채가 8,350억원 순발행됐다.
특히 지난달에는 신용등급 ‘AA’급 우량 회사채의 발행마저 감소했다. AA급 이상 회사채는 지난달 1조8,600억원이 발행돼 3조1,300억원이 발행된 전월에 비해 40% 이상 급감했다. 전체 발행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전월의 89.7%에서 67.7%로 크게 줄었다.
지난해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시장에 상당한 돈이 풀려 있지만 주식 발행과 대출과 함께 기업의 자금조달 통로인 회사채 시장으로는 돈이 돌지 않는 셈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 풀린 유동성을 알 수 있는 척도인 광의통화량(M2)은 올 1월 현재 2,266조9,000억원(잔액 기준)으로 전월 대비 1.1% 증가했다. 통화량 증가폭은 2014년 11월 이후 약 1년여 만에 최대다. 이처럼 시중에 풀린 자금이 많아지고 기업들도 저금리로 회사채 조달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됐으니 언뜻 회사채 발행도 늘어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 가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한계기업들의 구조조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투자자들이 여전히 우량물 위주로 제한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연초 효과에 힘입어 KT·CJ제일제당 등 우량기업들은 올 초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1조원 이상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반대로 민자발전업체 GS EPS는 신용등급 ‘AA-’임에도 업황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커진 탓에 1,500억원 규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900억원의 미매각을 냈다. 신용등급 ‘A’인 현대로템은 회사채 발행이 여의치 않아 2,50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담보대출(ABL)을 받았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현대상선 회사채 만기 연장 문제가 걸린 비우량물의 상황이 좋지 않다. 현대상선은 다음달 7일 만기가 돌아오는 1,200억원 규모 회사채의 만기 연장에 실패했다. 앞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들의 상환도 줄줄이 미뤄질 공산이 크다.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두산건설도 올해 만기되는 차입금이 7,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박진영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상선의 회사채 만기 연장 실패로 비우량 회사채에 대한 투자심리 개선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