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3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에 임명된 이영섭 대법원장은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 직후, 정년을 한참 남겨둔 상황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 전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사법부(司法府)’라 쓰지 않고 ‘사법부(司法部)’라 적었다. 사법부의 위상이 행정부의 일개 부처로 전락했다는 자조적 표현이었다.
책 제목인 ‘사법부’는 후자에 해당하는, 부끄러운 이름의 사법부다. 역사학자이며 성공회대 교수인 저자는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우리 사법부가 겪은 고통스러운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책을 소개한다. 2004년10월부터 만 3년간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활동한 저자가 당시 책임집필한 보고서의 내용이 이 책의 근간을 이룬다.
책은 동백림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10·26 사건, 송씨일가 간첩단 사건, 김근태 고문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을 파고든다. 안기부 보고서와 재판일지, 판결문, 저자의 인터뷰에 기반한 내용들이 암흑에 가렸던 역사를 재조립한다. ‘법’이 인권 최후 보루이자 가진 것 없는 자들의 마지막 안식처임에도 해당 사건들마다 사법부는 힘없는 피해자들을 외면했다. 저자는 “통곡하는 심정”으로 썼다 했고 책은 “아프게” 읽힌다.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