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튼실한 중소기업이라도 환율과 원자재 가격 등 외부변수에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글로벌 환경에 따라 리스크에 노출되기 쉬운 것이 중소기업의 숙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켜 더 큰 발전을 일궈내는 기업들이 눈길을 끈다.
경기도 화성에서 유압 브레이커와 드릴 등 건설용 파쇄장비를 생산하는 수산중공업의 정석현 회장. 발전소 건설분야에 종사했던 정 회장은 2004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수산중공업을 인수했다. 경쟁력이 없는 제품은 과감히 정리하고 관납·군납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해외 90여개국에 파쇄장비를 수출하는 강소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2006년 3,000만달러, 2008년 5,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하지만 2008년 키코(환헤지 파생금융상품) 사태가 터졌다. 환율위험을 막기 위해 키코 상품에 가입했는데 가파른 환율변동으로 2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정 회장은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며 “회사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최대 위기상황이었다”며 “노조와 상생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연구개발(R&D)에 집중하면서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하기 위해 직원들이 퇴직금을 정산해 출자했고 이를 통해 상장폐지 위기를 모면했다. 정 회장은 “직원들의 애사심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수산중공업이 존재할 수 있었다”며 “ ‘노동조합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2007년 노사문화 우수기업 노동부장관상, 2011년 노사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산중공업의 또 다른 무기는 R&D 능력이다. 사무직 150명 중 30%가 R&D 분야에서 일한다. 전체 사무실 중 3분의 2를 연구개발팀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정 회장은 “다른 부서의 경우 예산에 한도가 정해져 있지만 R&D 부서가 예산 증액을 요구해오면 타당성을 검토한 후에 승인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귀띔했다.
노사화합과 연구개발 강화로 키코 위기를 극복한 수산중공업은 생산제품의 65%를 독자브랜드로 중국과 중동, 동남아 등 해외에 수출한다. 국산화 1호 제품인 유압브레이커는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세계시장 점유율 5위를 기록하고 있다. 건설경기가 부진한 올해에도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경기도 군포에서 플라스틱 파이프를 생산하는 사이몬의 이국노 회장. 사이몬을 비롯해 지주, 유화수지, 오앤오 등 4개의 회사를 설립했다. 지난해의 경우 사이몬이 27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4개 회사 전체로는 49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남부러울 것 없는 회사를 일궈냈지만 이 회장은 1980년대를 떠올리면 가슴이 섬뜩해진다. 그는 “플라스틱 원료파동으로 부도 직전에 내몰리면서 사업을 접어야 할 순간이었다”며 “대기업 임원을 찾아가 원료를 공급해달라고 통사정을 해야 했고 위기상황을 극복하면서 회사는 더욱 튼튼해졌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 회장은 국내 플라스틱 업계의 대부로 통한다. 40여년간 폴리에틸렌(PE) 수도관과 가스관, 폴리염화비닐(PVC) 통신관 등 플라스틱 파이프를 생산하고 있다. 수도용 파이프는 사용수명 50년 이상의 장기 내구성을 자랑하며 통신관은 내식성과 굴곡성이 탁월하다. 한전, KT, SK, 코오롱, 한국농어촌공사, 티브로드 등 공기업과 대기업이 사이몬을 협력 파트너로 선정한 것은 이 같은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위기를 극복한 회사들이 이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며 “사이몬은 2018년, 자매회사인 지주는 내년에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화성·군포=서정명기자 vicsj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