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낮잠

김종해 作





여덟 살 때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집 닭장이 엎어졌기 때문이다

하느님보다 더 무서운 우리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회초리가 무섭고

사사건건 고자질하는 누나도 무섭다

맷돌 뒤로 들어간 공을 꺼내다가

맷돌이 떨어지고

맷돌 위에 얹힌 닭장이 엎어졌다


닭장 속에는 알을 품고 있던 암탉이 소리 질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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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은 깨어져 물이 되었다

따뜻한 달걀 속엔 병아리의 심장과 핏줄이 떠 있다

부러진 암탉의 다리에 붕대를 감으며

나는 이제 죽었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나절까지

석유를 먹은 것처럼 나는 낮잠을 잤다

그날따라 마당에는

칸나꽃이 더 붉게 타고 있었다

어린 가슴 콩닥콩닥 뛰는 소리가 하늘 무너지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으리. 옛날 기나라 사람은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다 웃음거리가 되었다지만 살다 보면 누구나 알지. 하늘은 수시로 무너진다는 것을. 조간신문에는 지구촌 곳곳에서 다 큰 어른들이 벌인 그날 치 저지레로 무너진 하늘이 그득하지. 고희를 훌쩍 넘긴 시인이 유독 여덟 살 하늘을 기억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고작 닭장 정도가 아니라 더 큰 걸 무너뜨리고도 두려워 않는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정작 무너질까 두려운 것은 하늘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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