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밤낮없이 일해 제품을 완성했으니 약속을 지켜달라.”
“제품 개발이 문제가 아니다. 계속 함께 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다.”
A와 B는 공동창업자다. A는 자본과 경영을 맡기로 하고 설립자본금을 모두 납입했다. B는 제품개발을 맡고 6개월 뒤 30%의 지분을 받기로 했다. 서로를 믿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이를 위해 B는 후배 개발자 두 명을 합류시켰다. 급여는 최소생계비만 받았다. 6개월이 돼 목표한 제품 개발을 완료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B가 경제적 문제로 정상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는 회사로 전직하기로 한 것이다. B는 개발이 완료됐고 후배들이 제 몫을 하고 있어 향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약속한 지분을 요구했다. 하지만 A의 생각은 달랐다. 애초의 약속은 사업을 함께하는 것을 전제로 했는데 그것이 깨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곧 있을 투자유치 협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따라서 지분을 주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서로 좋지 않게 끝나는 경우는 늘 이런 식이다. 애초의 계획대로 문제없이 일이 흘러가면 되는데 변수가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 이 변수를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게 된다. 이 스타트업의 경우 B가 중간에 회사를 퇴사하는 경우 어떻게 한다는 합의가 이뤄졌으면 어땠을까.
스타트업은 빠르고 신속한 것이 조직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그러다 보니 글로 구체화해야 할 것을 시간상 말로 약속하고 끝내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일이 잘될 때는 몰라도 새로운 변수가 생기면 문제가 된다. 그래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협업 진행과정에서 다양한 상대방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사람과 협력사업을 하게 됐다고 해보자. 이런 경우 계약서 작성은 필수다. 발생 가능한 경우의 수를 생각해 각자의 권리·의무 관계를 계약서에 적어넣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못 믿습니까” “이런 것까지 넣어야 합니까” 하면 “그렇죠?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않겠죠? 그냥 혹시나 해서 넣어두는 거예요” 하고 넘기면 된다. 상대방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해야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일할 수 있다. 계약 종료 시점에서도 웃으며 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이 계약서로 완벽하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모든 경우를 고려한다고 해도 누락되는 사항이 있기 마련이다. 본질적으로는 서로를 믿고 신의를 다해 계약의 본질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나. 앞서 예로 든 A와 B도 서로 믿었으니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상황이 변할 수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합의된 내용을 문서화하는 것은 상대방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더라도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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