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실패를 딛고 재기하기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미국처럼 실패로부터 회복하는 것이 쉬워야 새로운 도전, 새로운 창업이 활성화됩니다. 지금까지의 성공 전략을 버리고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야 합니다.”
30일 오전 삼성전자 서울 서초 사옥에 흰머리의 백인 한 명이 서류 가방을 들고 찾아왔다. 그는 입구를 지키고 있던 직원에게 다가가 자연스러운 한국말로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강연 때문에 왔는데 어디로 올라가야 하죠”라고 물었고 직원은 깍듯이 인사하고 그를 모시고 들어갔다. 이날 열린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단 회의 강연에 나선 ‘퍼스트 무버’의 저자 피터 언더우드(한국명 원한석)였다.
지난 24일 조직 및 인사 문화 혁신 ‘스타트업 삼성’을 선언한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들이 진정한 스타트업으로 거듭나는 데 필요한 조건에 대해 공부했다. 실리콘밸리의 실패를 연구한 언더우드를 초청해 진정한 스타트업 문화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했다.
언더우드는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의 4대손으로 한국에서 IRC컨설팅 선임파트너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에서 거주한 기간이 길어 한국말도 능숙하다. 이날 ‘한국, 한국인, 한국 경제 미래의 혁신’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언더우드는 실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빨리, 일찍, 자주 실패하라’라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격언을 소개하며 “샌프란시스코에서 매년 열리는 페일 콘(Fail Conference)에서는 실패에서 교훈을 찾고 공감대를 형성한다”며 “실패로 인한 불이익이 성공의 보상보다 훨씬 큰 사회는 혁신과 도전을 회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언더우드는 2012년 발간된 자신의 책 ‘퍼스트 무버’의 내용도 강연에서 소개했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저서에서 한국이 지금까지 지켜온 성공방정식인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을 버리고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로 거듭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 바 있다. 언더우드의 강연 내용은 최근 삼성그룹이 지향하는 바와 일맥상통한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말 창립 46주년을 맞아 임직원에게 “지난날의 성공방정식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변신이 필요하다”며 “캐치업(뒤에서 따라잡으려고 하는 팀플레이) 모드에서의 변신과 퍼스트 무버를 향한 변신은 차원이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선언한 스타트업 삼성 역시 지금까지의 성공방정식인 ‘관리의 삼성’이 아니라 권위와 허례를 벗고 스타트업처럼 도전하고 창의적인 조직으로 거듭나자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이날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한 임원은 “강의 내용이 최근 흐름과 잘 맞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