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초 론스타가 내놓은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KB국민은행과 하나금융지주가 맞붙었다. 당시 인수 실무팀을 지휘하던 핵심 인물은 국민은행의 이동철 부장(현 KB금융지주 전략담당 전무)과 하나금융의 김병호 상무(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였다. 둘은 모두 뉴욕지점장 출신으로 인연이 깊었고 조직 내의 대표적인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손꼽혔다.
치열한 수 싸움 끝에 승리를 거머쥔 것은 국민은행이었다. 2006년 3월 국민은행은 외환은행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던 강정원 전 행장의 뒤에 실무 책임자였던 이 부장이 있었다. 외환은행 인수는 그러나 ‘헐값매각’ 논란이 불거지면서 결국 무산됐고 이 부장도 M&A 실무를 떠났다. 그 이후 KB는 KB손해보험(옛 LIG손해보험)을 제외하고는 대형 금융사 M&A에서 줄줄이 실패했다.
KB금융이 결국 현대증권을 품에 안은 가운데 이번 인수전을 지휘한 3인방인 김옥찬 KB금융지주 사장, 이동철 전무, 이창권 전략기획부장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M&A팀을 다시 꾸렸고 서울보증보험 사장으로 간 김 사장과 KB생명 부사장을 맡고 있던 이 전무를 불러들였다. 윤 회장의 용병술은 결국 현대증권 인수를 통해 ‘신의 한 수’로 입증됐다.
그 중에서도 독특한 이력을 보유한 인물이 이 전무다. 10년 전 외환은행 인수전의 주인공이 다시 돌아온 것.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전무는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딴 뒤 로펌에서까지 근무한 능력이 출중한 뱅커다.
강 전 행장 시절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뉴욕지점장에 발탁됐고 외환은행 인수 실무팀을 맡기 위해 본국으로 급파되기도 했다. 앞서 국민·주택은행 합병 과정에서도 인수 실무를 맡았고 2003년 국민은행의 인도네시아 BII(Bank International Indonesia) 인수전에도 가담한 경력을 갖고 있다. 명실공히 KB 최고의 M&A 전문가인 셈이다. 한때 KB를 잠시 떠나기도 했던 이 전무는 올해 KB지주 전략 담당 전무로 화려하게 복귀해 윤 회장이 ‘대어’인 현대증권을 낚는데 힘을 보탰다.
인수작업을 총괄한 김 사장 또한 이번 현대증권 인수를 통해 입지를 다졌다. 국민은행 수석 부행장을 지냈던 김 사장은 KB 내 대표적 ‘재무통’으로 퇴임 이후에도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의 부사장을 비롯해 SGI서울보증보험 사장에 임명되는 등 대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 사장은 올해 지주 등기이사로 오르지는 못했지만 이번 현대증권 인수를 통해 입지를 확고히 하고 앞으로 KB의 비은행 강화 전략을 총괄 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인수 실무를 맡았던 이 부장 또한 KB의 M&A 전문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이번 인수전의 조력자이기는 하지만 결국 KB의 M&A의 저력을 키운 것은 윤 회장이다. 윤 회장은 이번 인수전에서 1조원 이상을 베팅하는 통 큰 결단과 사외이사들의 전폭적 신임을 얻어내는 리더십,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용병술을 제대로 보여줬다.
특히 지난 대우증권 인수전에 실패한 이후 회계사 출신인 윤 회장이 M&A 에서 너무 조심스러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으나, 이번 현대증권 인수전에서는 제대로 된 ‘승부사’ 기질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KB금융 내부의 한 관계자는 “KB의 가장 성공적인 투자로 평가 받는 있는 인도네시아의 BII 인수도 윤 회장의 작품이었다”며 “이번 인수를 통해 국민은행장이 아닌 지주 회장으로서의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는 평가가 내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