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클라호마주 교외의 한 주택. 이곳에서 필자는 오랜 기간 전자업계에 종사하다가 퇴직한 76세의 마크 크리스몬과 만났다. 계절은 7월이었고, 기온은 37도에 육박했다. 정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던 중 멀리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들으셨나요? 잠시 조용히 하고 계세요.” 분당 1~2회 꼴로 우르릉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 소리는 피부로도 느낄 수 있었다. “약한 지진이에요. 또 오는군요. 가서 지진계를 살펴봅시다. 어떤 상황인지 알려드리죠.”
우리는 그의 차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벽에는 그가 사냥한 사슴과 코요테의 꼬리가 잔뜩 매달려 있었다. 책상으로 다가간 크리스몬은 노트북 화면을 주시했다. 이 노트북은 땅속에 묻어놓은 지진계와 연결돼 있었다.
“오클라호마주의 지진 활동이 부쩍 늘었어요. 그 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연구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클라호마 주립대 연구팀이 지난 2014년 제게 지진계를 주더군요.” 그는 화면 속 평행하게 그려진 세 줄의 선에 시선을 멈췄다. 지진파가 그려진 선이었는데 아래쪽부터 청색, 적색, 녹색으로 표시돼 있었다. 이 선들은 평상시 직선에 가깝게 그려지지만 정원에서 진동을 느꼈던 수분 전의 구간은 울퉁불퉁 그 자체였다.
“저는 매일 아침 6시부터 14시간 동안 이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렇게 지진파가 감지되면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 데이터로 남기죠. 개인적으로 이 사진 데이터를 ‘증진되는 위협’이라 칭합니다.”
지금껏 그가 촬영한 사진은 무수히 많다. 그만큼 많은 지진이 있었다는 얘기다. 역사적으로 오클라호마주는 강도 3.0 이상의 지진이 거의 없던 지역이다. 기껏해야 연평균 2건 이하였다. 그랬던 이곳에 지진이 빈발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실제로 오클라호마대학 산하 오클라호마지질 서베이(OGS)의 자료에 의하면 2012년에만 강도 3.0 이상의 지진이 35건 발생했다. 그리고 2013년 109건, 2014년 584건으로 치솟았다. 작년의 경우 11월 23일 현재 802건으로, 연말까지는 무려 1,000건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규명해낸 원인은 바로 석유와 천연가스 업계였다. 원유와 천연가스를 추출한 뒤 생긴 빈공간에 의한 지반침하를 막고자 오폐수를 대신 주입하는 이들의 관행이 지진의 원흉이라는 설명이다.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지구물리학자인 토드 헬리핸 교수에 따르면 미 대륙 지하의 화강암 암반은 단층으로 가득하다. 오클라호마주의 넓은 밀밭과 알팔파밭 1.5㎞ 아래에도 단층이 있다.
“평상시 단층면에 접한 두 암반은 자연적 응력에 의해 꽉 맞물려 있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층 깊은 곳까지 물이 주입되면 화강암의 균열 속으로 스며들면서 윤활유처럼 작용합니다. 그 결과, 단층의 암반이 미끄러지면서 지진이 발생하는 겁니다.”
인간은 저수지를 만들고, 광물을 채굴하고, 핵무기를 실험하고, 지열에너지를 얻기 위해, 그리고 온실가스 저감이라는 미명 하에 이산화탄소(CO2)를 포집해 지하에 저장하면서 땅을 흔들어 놓았다. 본의 아니게 지진을 일으킬 새로운 방법을 찾아왔던 것이다. 이 지진은 체감하지 못할 만큼 경미할 때도 있지만 건물과 교량을 무너뜨리고,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미국과 중국, 일본, 스위스, 인도 등 지진을 겪어본 사람들은 이런 의문이 들곤 한다. 지진은 막을 수 없는 걸까. 앞으로도 인간은 지진피해를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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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공 지진이라는 골칫덩이를 처음 인지한 것은 20세기 초쯤이다. 당시 남아프리카의 금광과 유럽의 석탄 광산에서 중력에너지에 의해 갱도 위의 암반이 주저앉으면서 인공 지진이 발생했던 것.
1930년에 이르러 미국도 인공지진에 주목하는 계기가 생겼다. 후버댐 건설로 세계 최대 인공호수인 미드호가 만들어지자 갑자기 생긴 120억톤의 물에 의해 애리조나주와 네바다주의 경계지역에 수백 건의 미진(微震)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미 지질조사국(USGS)의 명예 지진학자이자 스탠퍼드대학의 지구물리학 교수인 빌 엘스워스 박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었죠. 과학 역사의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지질학자들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지진과 저수지를 연관 지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1967년 인도 코이나댐 인근에서 발생해 200명이 사망한 강도 6.3의 지진, 2008년 8만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양산한 강도 7.9의 쓰촨성 지진등을 말이다. 이와 관련 저수지의 저수량과 지진 발생빈도의 연관성을 연구한 바 있는 자연재해 연구자 크리스티앙 클로제 박사는 쓰촨성 지진의 진앙지로 약 10㎞ 떨어져 있던 지핑푸댐을 지목하기도 했다.
오클라호마주에 불길한 전조가 찾아든 것은 1960년대였다. 평화롭던 덴버 지역에 일련의 지진이 찾아온 것이다. 1962년 발생한 두 번의 지진은 유리를 부수고, 벽에 금이 가게 했으며, 전기 콘센트를 벽에서 떨어져나가게 했다.
과학자들은 이 지진의 진원지를 추적했다. 그리고 ‘로키마운틴 아스널(RMA)을 지목했다. 지금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됐지만 과거 미군의 화학무기 및 로켓연료 제조시설이 위치했던 곳이다. 조사 결과, 지진 발생 수주일 전 이 시설에서 지하 약 3㎞의 기반암에 폐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이 행위가 종료된 이듬해인 1967년에도 덴버에 강도 5.3의 지진이 덮치며 100만 달러 이상의 재산피해를 일으켰다.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지질학자 데이비드 에반스 박사팀은 RMA가 주입한 폐수의 양과 지진의 횟수 사이에 연관관계를 연구, 둘 사이의 인과 관계가 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폐수에 의한 지하 암반의 미끄러짐을 입증하기 위해 맥주캔의 밑바닥에 구멍을 뚫고는 새어나온 맥주 때문에 캔이 미끄러지는 것을 보여주는 일명 쿠‘ 어스 맥주 실험’을 시연하기도 했다.
물론 미 육군은 이 가설에 반론을 제기했지만 후일 에반스 박사팀의 이론은 정당성을 입증 받았다. USGS 연구자들이 콜로라도주 랭글리 지역의 유전 지하에 액체를 주입, 인위적으로 지진을 일으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과학자들은 지진 활동의 변화에 대한 기록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얼마 뒤 미 내무부 개간국(USBR)의 계획이 레이더에 포착됐다. 랭글리 유전 지대에서 남쪽으로 320㎞ 떨어진 패러독스 계곡의 지하 석회석 암반에 염분이 함유된 지하수를 주입하려 했던 것이다. USBR의 지구물리학자인 리사 블록 박사에 의하면 이를 통해 석회석에 의한 콜로라도강의 오염을 막고자 했다. 지하수 주입 이전에 지진 유발 가능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이 있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이전 6년간 이렇다 할 지진 기록이 없었던 이 지역은 1991년 주입정을 통해 폐수 주입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무려 6,200여건이 지진이 발생했다. 대부분은 소규모였지만 말이다.
이렇듯 오클라호마주에서 오폐수 주입량을 늘리기 시작 할 때는 인위적 유체 주입에 의해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개념이 일반화돼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연간 10억 배럴 이상이 주입되고 있다. 주민들의 경계심이 풀어진 탓이다. 이런 태만은 지진이 가정을 덮치고 있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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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6일. 오클라호마주 스틸워터 지역의 자택에 머물던 토드 핼리핸 교수는 갑자기 창문의 흔들림을 느꼈다. 지진임을 직감한 그는 6살이었던 아들에게 달려갔다.
그의 집에서 약 80㎞ 떨어진 프라하 인근이 진앙지였던 그 지진은 오클라호마주 역사상 가장 강력한 규모 5.7의 강진이었다. 고속도로가 휘어졌고, 14채의 가옥이 완파됐다. 세인트 그레고리대학의 유서 깊은 첨탑도 하릴없이 무너졌다.
오클라호마대학과 컬럼비아대학, USGS 공동연구팀은 한 주입정으로부터 20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 단층의 파셰일 에너지에 관해 연설했을 때도 주입정 내용은 전혀 없었다. 참고로 수압파쇄공법으로 채굴되는 셰일오일과 셰일가스는 다량의 오염된 유체(流體)를 발생시킨다.
한편 작년 11월까지 오클라호마 주정부의 공보실장을 지낸 알렉스 와인츠는 폴린 주지사의 개인적 관점은 데본에너지의 논점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 관점은 그녀가 취임하던 2011년의 상황에 기인합니다. 당시는 지진이 막 늘기 시작한 때였고, 관련연구가 발전한 것은 그
이후였습니다.”
당시는 오클라호마대학 연구자들이 주축인 OGS도 주입정과 지진의 연관성 규명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했다. 오히려 2013년 프라하 지진이 자연적 원인에 의한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 조사에 참여했던 홀랜드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석유가스업계는 주정부에게 매우 중요한 산업입니다. 그래서 공식발표의 일부에는 말장난의 수준이 상당합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열심히 데이터를 뒤지면서 증거들이 도출됐고, 유체의 주입이 지진 활동 증가의 원인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폴린 주지사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녀는 작년 8월 주의회 지진활동 조정위원회에서 이 같은 발언으로 입장변화를 나타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오클라호마주 일대의 지진 활동 증가가 주입정과 직접적 연관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의 연구를 보면 지진 활동은 석유가스업계 자체에도 큰 위협이다. 오클라호마주 쿠싱 지역에 위치한 세계 최대 원유 저장소의 바로 아래에 주입정 때문에 활성화된 단층이 존재하는 것. 오폐수 주입이 지속될 경우 이곳의 저장탱크와 파이프라인을 파괴하기에 충분한 규모 5.7의 지진이 재현될지도 모른다.
이는 오클라호마주 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 중부의 여러 주 또한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다. 예컨대 2011년 12월 31일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에서 규모 4.0의 지진이 발생, 건물들을 뒤흔들었다. 이후 지진 유발자로 의심되는 주입정이 폐쇄됐다. 이외에 아칸소주, 콜로라도주, 캔자스주, 뉴멕시코주, 텍사스주의 지진 증가도 오폐수 주입과 유관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USGS의 엘스워스 박사는 이 같은 지진이 해외에서 일어난다면 훨씬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강조한다.
“미국은 과거 기술로는 추출이 어려웠던 유정이나 셰일 층에서 원유 및 가스를 얻을 수 있는 수압파쇄공법의 개발과 상용화를 주도했습니다. 이 기술은 전 세계로 확산될 잠재력이 있어요. 문제는 여타 산유국들의 건축물 설계 기준이 미국에 비해 낮다는 겁니다. 동일한 강도의 지진이라도 물적, 인적 피해가 클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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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지금껏 땅을 쓰레기장이자 자원 창고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로인해 미래에 큰 위협이 될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형태로 전 세계의 에너지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다. 이제 엔지니어들은 석유와 가스가 제공해줄 에너지와 친환경성에 더해 잠재적지진의 위험까지 모든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주지할만한 점은 어떤 경우 환경에 가해지는 피해를 줄이려는 기술이 오히려 지진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CO2 포집저장(CCS) 프로젝트가 그 실례다.
CCS는 화력발전소, 제철소 등 대형 CO2 배출원으로부터CO2를 포집해 지하 심부나 해저에 10만년 이상 안정적으로 저장하는 기술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도 대기 중에 배출되는 CO2의 양을 획기적으로 저감할 수 있어 미국·일본·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이 1990년대부터 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해왔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현존하는 가장 효율적인CO2 배출저감 기술로 부각되고 있는 상태다.
다행히 CCS에 의한 CO2 주입은 아직까지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미진을 일으켰을 뿐이다. 그러나 스탠퍼드대학의 지구물리학자인 마크 조백 박사와 수리지질학자 스티븐 고어릭 박사는 향후 지하에 CO2를 다량 저장하면 더 큰 지진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만일 지진에 의해 저장돼 있던 CO2가 대기로 방출되기라도 하면 환경적 이점도 말짱 도루묵이 된다.
두 사람은 2012년 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다. “중소규모의 지진이라도 땅 속의 CO2를 지상으로 재방출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CCS는 극히 비싸고 위험한 온실가스 감축 전략이다.” CCS 지지자들은 두 학자의 판단이 급진적이라 평가한다. 미국 일리노이주 디케이터 지역에서 CCS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는 USGS의 지구물리학자 올레 케빈 박사도 그중 한명이다.
“첨단 탐사장비를 이용해 지하의 단층과 균열, 유체 이동 통로를 매핑할 수 있다면 지진 위험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해도 대폭 줄일 수는 있어요. 또한 CO2 감축에 의해 인류가 얻을 이익이 지대하다면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분명한 논쟁거리다. 기술로 인해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지열 발전을 예로 들어보자. 지열은 환경 위해성이 적으면서 신뢰성이 높지만 널리 활용되지 않는다.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BL)와 샌디아 국립연구소(SNL)에 모두 적을 두고 있는 어니스트 마제르 박사의 표현을 빌면 지구상의 지열을 모두 에너지로 쓸 수 있다면 다른 에너지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진다.
그럼에도 왜 지열의 활용도가 이처럼 낮은 걸까. 스위스 바젤의 지열 발전소 사례가 그 대답이 될지 모른다. 도시 지하의 뜨거운 화강암에 차가운 물을 주입, 온수를 생산해 에너지를 얻었던 이 발전소는 2006년 12월 가동을 개시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주에 규모 3.4의 지진이 바젤을 덮쳤다. 정부의 연구 결과, 발전소를 재가동하면 5억 달러 이상의 재산피해를 일으킬 지진의 발생확률이 15%로 나타났다. 결국 바젤 지열발전소는 2009년 폐기됐다.
이 사건 이후에도 도시가 아닌 시골의 지열 발전은 지속되고 있다. 세계 최대 지열 발전 지대인 캘리포니아주 가이저스 지역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곳 인근의 주민들에게 수시로 찾아오는 미진은 이제 일상이됐다. 가끔씩 큰 트럭이 집을 들이받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는 게 주민들의 전언이다.
이에 대해 마제르 박사는 지구온난화 방지와 청정에너지가 주는 이득에 비해 CCS나 지열발전이 초래하는 위험은 미미하다고 여긴다. “온실가스는 지구와 인간의 건강에 매우 해롭습니다. 화석연료 경제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외에도 온갖 해로운 물질을 만들어내죠. 우리에겐 그것을 극복할 해법이 있어요. 설령 CCS와 지열발전에 의해 지진활동이 늘더라도 화석연료에 계속 의존해서 맞닥뜨리게 될 모든 위험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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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에너지 생산을 멈추지 않는 한 과학자들은 이보다 더 복잡한 문제에도 직면해야 한다. 위험의 최소화가 가능한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콜로라도주 랭글리 유전지대에서의 인공 지진 실험 이후 과학자들은 액체의 주입 압력 및 속도를 조절, 지진 활동을 줄일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이는 희망적 소식이었다. 잘만하면 인공 지진의 피해 최소화에 더해 자연 지진을 통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USGS는 캘리포니아주에 대형 지진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샌안드레아스 단층에 주입정을 파서 작은 인공지진을 유발, 이론을 검증하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물론 이 계획은 추진되지 않았다. 수천 개의 작은 지진으로 대형 지진 하나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도 없을뿐더러 위험성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헬리핸 교수는 만일 이 계획이 실행됐다면 자칫 작은 지진 10만건이 아니라 대형 지진 1건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단층은 3차원의 복잡한 구조예요. 설령 실험이 국지적으로 성공했더라도 지진에 의해 단층의 다음 구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인근의 샌프란시스코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지만 LA가 초대형 지진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겁니다.”
지금은 누구도 또 다른 프라하 지진을 막을 방법을 찾기 위해 오클라 호마주에 작은 지진을 일으키자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대신 한층 온건한 지진 관리법을 논의 중이다. 홀랜드 박사에 의하면 그간의 연구를 통해 여러 대응 수단들이 대두됐다.
“단층을 피해 주입정을 운용하거나 오폐수의 양과 주입 속도를 낮추거나 지금보다 얕은 지하에 주입하는 방안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또 발전된 지진 관측 기술의 적용이나 주입정 운용을 금지하는 것도 제안돼있어요.”
실제로 오클라호마주는 2013년 지진 활동을 근거로 주입정의 크기 축소와 폐쇄를 명령할 수 있는 이른바 신‘ 호등’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리고 2015년 일부 주입정의 주입량을 감축을 명령했다. 오폐수 주입 깊이에 제한을 두고, 일부 주입정을 폐쇄시키기도 했다. 안타까운 점은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작성되던 24시간 동안에만 규모 3~4의 지진 8개가 오클라호마주 북부를 강타했다는 것이다.
지하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직 많다. 우리 손으로 만든 지진의 제어가 힘든 것도 그러한 지식의 공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지구 내부 깊숙한 곳의 속성과 그곳을 지배하는 원리야 말로 지구 최대의 비밀 중 하나일 겁니다. 직접 관찰이 사실상 불가능하니까요. 압력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전파되는지, 단층은 차단재로 작용하는지 아니면 전도체 역할을 하는지, 그곳의 응력 상태는 어떤지 등 모르는 게 부지기수죠. 과학은 엄청난 노력과 자원을 투입해 이 문제들을 풀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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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핸 교수는 주입정과 인공 지진, 친환경에너지와 인공지진 논란의 두 측면을 모두 이해하려 애를 쓴다. 자신의 제자들이 졸업 후 에너지 업계의 동량이 되길 바라는 동시에 지진이 또 일어나 아들을 구하러 뛰어갈 일이 없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결정을 내리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 결정이 무엇이든 결코 간단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최선책은 없겠지만 차선책이라도 행하려면 석유가스 생산의 이점과 지진 발생의 피해를 빈틈없이 따져봐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두 요소 사이에 조화를 이룰지,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이 사안이 대화의 무대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부분이다. 아직도 일부 산업계와 정계 지도자들은 현대 과학의 발견 결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일부 지진 다발 지역 주민들 역시 현실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이들의 유일한 무기는 목소리를 높여 우기는 것뿐이다. 이로 인해 과학계와 대화의 자리가 마련돼도 합의점을 찾아가기 보다는 오히려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헬리핸 교수는 기술에는 위험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타이타닉호처럼 큰 선박을 만들면 침몰할 위험도 커지며, 항공기의 발명으로 삶의 질이 향상됐지만 추락에 의한 인명피해도 늘었듯이 말이다.
“원치 않는 결과가 생긴다고 기술 자체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절대 나쁜 결과가 생기지 않는 척 우기는 것은 더욱 안돼요.”
그는 우리 힘으로 제어 불가한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인공 지진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 강조한다. 컬럼비아대학의 지진 지질학자 레오나르도 시버 박사도 이에 동의한다.
“정부와 기업은 눈앞에 닥친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동차를 타려면 휘발유가 필요하죠. 또 휘발유를 얻으려면 유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유정에 유체를 주입, 원유를 꺼내야 하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지하암반의 응력 구조가 변합니다. 그 결과, 예측 불가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어요. 이 모든 일이 서로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규모 5.7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강도의 지진. 2011년 11월 6일 발생했다.
▲ 지진 폭발
10년 전 북미지역 5개 주(州)의 지진발생 건수는 연간 14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4년 현재 무려 650건으로 46배 이상 폭증했다. 특히 지진의 대부분이 오폐수 주입정 인근에서 일어나고있다.
인간이 유발한 지진
1. 주입정이 정말 지진을 유발하나?
그렇다. 1960년대 초 오클라호마주 덴버 인근 지역에서 총 710회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 지진들은 미군의 화학무기 제조시설인 ‘로키 마운틴 아스널’이 이곳에 주입정을 설치해 오폐수를 처리한 지 한 달 뒤부터 시작됐다. 1960년 이전 덴버의 지진은 1882년이 마지막이었다는 점을 비롯해 다각적 분석을 통해 내려진 결론은 명백했다. 땅 속 깊은 곳으로 주입된 대량의 물이 지진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2. 최근 미 전역에서 빈발한 지진도 주입정 때문인가?
그렇게 봐도 된다. 최근 사이언스지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지구물리학자들이 로키산맥 동쪽의 지진들을 분석해 주입정과의 강력한 연관성을 찾아냈다. 2011년 이후 발생한 규모 3.0 이상의 지진 중 무려 87%가 반경 24㎞ 내에 주입정이 있었다.
3. 석유가스업계가 지진을 막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 않다. 사이언스지의 논문 저자들은 약 2만개의 주입정 인근에서 발생한 7,000여건의 지진을 분석, 지진 발생의 많은 책임이 주입정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염수(鹽水)를 너무 빠른 속도로 주입하는 행위를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원유나 가스 추출을 위한 수압파쇄공법용 유체는 유정과 가스정에 주입되지만 염수 주입정은 평범한 땅에 주입되므로 주입량이나 깊이보다 속도의 위해성이 더 크다는 것. 액체의 주입 속도가 너무 빠르면 지하 암반의 틈새로 퍼질 시간이 짧고, 이것이 압력 상승을 초래해 단층선의 암반을 깨드린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미시건주 등 일부지역의 고속 주입정은 지진을 일으키지 않았다. 때문에 지각의 구조도 지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보인다.
RMA - Rocky Mountain Arsenal.
기반암 (基盤岩) - 대륙의 지각을 구성하는 암석 지층.
주입정 (注入井, injection well) - 유체를 강제로 주입시키기 위한 시추공.
수압파쇄공법 (hydraulic fracturing) - 유정이나 가스정 내에 유체(流體)를 고압 주입해 주변의 셰일을 깨뜨려서 천연가스를 추출하는 채굴법. 채굴량을 늘려주지만 파쇄 후 회수된 유체는 심하게 오염된다.
CCS - Carbon Capture and Stor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