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인수로 국내 자본시장이 지난 2009년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7년 만에 다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2009년이 신규 증권사와 파생상품 난립으로 자본시장이 분화된 시기라면 2016년에는 금융지주사의 증권사 인수로 자본시장이 대형증권사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관련기사 2·3면
1일 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인수는 자본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선택이 ‘규모 확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지난달 대주주적격심사를 통과한 미래에셋대우증권에 이어 KB금융이 현대증권을 인수하며 증권업계는 덩치를 키우는 방향으로 새판짜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1949년 첫 증권사인 대한증권(현 SK증권) 탄생 이후 66년 만에 두 개의 ‘빅딜’이 같은 시기에 이뤄진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은행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빅딜로 대형화를 거쳤던 데 비해 증권가는 ‘스몰딜’만 있었을 뿐 시장판을 흔들 대형 인수합병(M&A)은 없다시피 했다.
KB금융이 현대증권을 인수하며 국내 증권업계는 명확한 1등을 말할 수 없는 혼전상태에 들어갔다. 미래에셋이 KDB대우증권을 인수하며 자기자본(5조8,000억원) 기준으로 1등에 올라서지만 2등인 NH투자증권이나 현대와 합병할 예정인 KB투자증권, 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이 언제든 증자와 추가 M&A로 순위를 바꿀 수 있다. 특히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을 확보한 종합금융투자사인 이들 5개사는 인수금융, 헤지펀드 설립, 기업투자금융(CIB) 등 다양한 수익원 확보를 위해 추가로 덩치를 키울 수밖에 없다.
한때 글로벌 투자은행을 목표로 일제히 달렸던 증권사들의 목표도 이번 인수전을 계기로 달라졌다. 전업 증권사에서 출발한 미래에셋대우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벤치마킹 모델을 일본의 노무라증권으로 삼고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NH투자증권·신한금융투자·하나금융투자·KB현대투자증권(가칭)은 자산관리(WM)와 CIB에 집중한다. 벤치마킹 모델도 소매금융 발판에 투자은행(IB)을 결합한 BoA메릴린치다.
미래에셋대우증권·KB현대투자증권의 등장으로 국내 자본시장에 ‘팔레토 법칙’이 굳어지고 있다. 팔레토 법칙은 전체 인구의 20%가 부의 80%를 담당한다는 이론으로 이를 국내 자본시장에 적용하면 전체 증권사 중 상위 20%가 국내 자본시장의 80%를 움직일 것이라는 의미다. 박영석 한국증권학회 회장(서강대 교수)은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증권사들의 규모 확대는 불가피하다”며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hs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