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이기철 作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멀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당신이 읽은 책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당신의 독법이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 만난 사람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당신이 아름답게 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들 돌아온 저녁을 위해 더 따뜻해야 했고, 초승달 걸린 밤하늘 한갓지게 내다보기 위해 하루 일과를 성실히 마쳐야 했을 것이다. 당신은 삶을 사랑하지만 이별을 완성이라 여긴다. 모두 꽃의 만개에 환호할 때, 당신은 허공을 딛는 낙화의 발을 본다. 내가 만난 세상이 모두 아름다웠다면 나 또한 아름다운 자이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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