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기업이 ‘가혹한 규제’로 꼽고 있는 부정행위기업의 ‘공공사업 입찰참가 제한’ 규정이 무더기로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랐다. 기업들은 부정 행위시 과징금에 형사처벌까지 받는 상황에서 모든 공공사업의 입찰까지 제한되는 것은 지나친 ‘3중 규제’라는 입장이다. 더구나 최근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 경제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관련 조항의 위법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사업의 경우 국민의 세금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부정행위는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해 헌재가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된다.
6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헌재는 공공사업 입찰참가자격제한을 규정한 3개 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상 조항은 ‘공공기관 운영법 39조 2항’ ‘국가계약법 27조 1항’ ‘지방계약법 31조1항’ 등이다. 앞서 롯데건설·비츠로시스·현대엔지니어링·한라·현대중공업 등 5개 기업은 지난해 2월~11월 차례로 “입찰제한 규정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2012년에는 한진중공업 한 곳이 공공기관 운영법에 대해서만 헌법소원을 제기해 ‘합헌’ 결정이 났지만 이번에는 다수의 기업이 제한 규정이 있는 모든 법에 대해 무더기로 소원을 냈다. 그만큼 입찰제한 규정 완화를 바라는 기업들의 뜻이 간절하다는 방증이다.
헌재 심판대에 오른 공공기관 운영법 39조는 ‘공정한 경쟁이나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것이 명백한 법인 등은 최대 2년간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 입찰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계약법은 중앙부처 사업, 지방계약법은 지자체 사업 참가를 막는다. 구체적인 대상은 담합을 저지르거나 입찰·계약 관련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기업 등이다. 각 법은 상호 연계돼 한 공공기관으로부터 입찰제한 처분을 받았다면 다른 모든 공공기관·중앙부처·지자체 등 사업도 지원할 수 없다.
기업들은 “한 사업 영역에서 잘못했다고 모든 공공사업 영역 참가를 막는 건 과잉 규제”라고 주장한다. 중복 처벌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예컨대 담합을 저지르면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제재, 사법 당국의 형사 처벌 등도 받는데 입찰제한까지 더하면 ‘3중 규제’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규제 적용 대상을 행정기관이 입법권을 갖는 시행령 등에 포괄 위임한 것도 불만이다. 실제 현대중공업 등의 헌법소원 청구 이유에는 과잉금지원칙·포괄위임입법금지 원칙 위반, 평등권 침해 등이 적시돼 있다.
공정위원장을 지낸 노대래 성균관대 석좌교수는 “입찰제한 규제는 시장 경쟁을 제약하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적용해야 한다”며 “특정 사업 분야에서 여러 기업이 한꺼번에 입찰제한을 받으면 독점 입찰이나 외국계 기업만 사업에 참가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입찰제한 규정 폐지 내지 완화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찰제한이 과잉 규제라면 그게 두려워서라도 부정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담합 같은 경우 계속 적발되지 않느냐”며 “더구나 공공공사에서 부정당행위가 일어나면 국민의 세금으로 기업의 부정을 지원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입찰제한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입찰제한 규정에 대한 헌재 결정은 2012년 1년 정도 심리 기간이 걸렸던 점 등을 감안하면 이르면 올 하반기 안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