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폭탄 만들기(리처드 로즈 지음, 사이언스 북스 펴냄)
“아빠는 오늘 아침 일본의 민간인 수천 명이 죽고, 불구가 되는 작전에 참가한 것이 무척 후회스럽구나. 하지만 우리가 만든 이 끔찍한 무기가 세계를 단결시켜, 더 이상의 전쟁을 막아 줄 거라는 희망도 가져본단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일본 히로시마. 최초의 핵무기, 일명 ‘리틀 보이’가 상공 580m에서 폭발했다. 저주의 폭탄을 떨어트린 폭격기 건너, ‘그레이트 아티스트(위대한 예술가)’라는 이름의 지원 폭격기에 타고 있던 미국의 물리학자 루이스 윌트 앨버레즈는 작전이 끝난 뒤 네 살 아들 윌터에게 편지를 썼다. 끔찍한 경험을 털어놓은 편지의 서두는 이랬다. “지금까지 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어른이 되어서 읽으라고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구나.”
수소 폭탄 만들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미국과 소련이 수소폭탄을 놓고 벌인 경쟁을 긴장감 넘치는 묘사로 그린 논픽션 소설이다. 실존인물인 앨버레즈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히로시마 원폭은 실제로도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또 다른 전쟁’, 핵무기 경쟁의 서막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프롤로그로 책에 제시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수소 폭탄은 미국과 소련을 둘러싼 20세기 후반 정치·과학·군사적 사안이 충돌하고 분열하며 융합한 산물이다. 양국의 정치인들은 적국에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 과학자들은 자신의 과학적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 욕심에 무한 군비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끝없는 경쟁은 결국 소련을 경제 위기로 몰아넣고, 결국 소련은 붕괴했다. 미국은 4억 달러를 날렸다. 그렇게 ‘쓰지 못할 무기’를 만들다가 양국은 냉전의 종말을 맞이했다. 책은 어떤 과학자들에겐 희망이었고 어떤 정치인들에게는 유일하게 애국적인 무기라고 여겨졌던 수소 폭탄의 개발사와 20세기 냉전의 기록을 정리한다. 서스펜스 스릴러를 읽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지지만, 1,000여 건의 문헌과 증언을 바탕으로 탄탄한 팩트 위에 쓴 논픽션이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에드워드 텔러, 레오 실라르드, 스타니스와프 울람 등 현대 물리학계의 스타들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또 해리 트루먼, 이오시프 스탈린, 커티스 르메이, 라브렌티 베리야, 니키다 흐루쇼프,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이승만까지 수많은 거물의 명멸과 이들의 고민, 이데올로기, 공포와 광기를 펼쳐낸다. 5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