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다시 선 침목=프랑스 루이 14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유명한 파리 팔레루아얄정원에 한국 조각가 정현의 침목(枕木) 군상 50여점이 호위병처럼 지키고 섰다. 오는 6월12일까지 열리는 야외조각전인 ‘서 있는 사람’이다. 쓰이다 버려진 재료인 잡석, 석탄, 아스팔트 콘크리트 등의 재료 속에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끌어내 온 작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철로를 버티며 기차의 무게와 풍상을 견뎌온 침목 작업을 진행했다. 재료의 가공이나 변형은 최소로, 오히려 재료의 특성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게끔 배려하는 정현의 작업 경향은 유럽의 예술관과는 자못 다르다. 침목의 팍팍한 나뭇결이 살아있는 작품은 미완성처럼 보일 정도로 투박하지만 그럴수록 안에 밴 질긴 생명력과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더 잘 드러난다. 철도에 누워 있다 작품으로 태어난 침목은 마치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시민들처럼 강인하게 다시 일어섰다. 홍익대 출신의 정현은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2006년 올해의 작가’, 2014년 김세중조각상 등을 수상했다.
◇벼랑끝에 매달린 인간주사위=‘인간주사위’는 말 그대로 주사위를 몸통 삼아 머리와 팔다리가 뻗어나온 형상이다. 주사위에 찍히는 점 대신 그 자리에 남성 성기가 솟아 있다. 징그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전시가 한창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7전시실의 입구에 “성적으로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작품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는 안내문이 붙은 이유를 알 만하다. 작가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중 하나인 질 바비에다. 생명의 탄생 등을 의미한 작품에 대해 그는 “주사위를 던져서 예측할 수 없는 숫자가 나오는 것처럼 성기가 구를 때마다 뭔가 새롭고 창조적인 세계가 발견되면 좋겠다”고 설명한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초기작은 사전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쓴 작품으로, 작가의 주된 관심은 언어·텍스트·소통을 향한다. 병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증상을 뜻하는 ‘다변증’이란 제목의 작품은 작가의 얼굴을 본 뜬 두상 조각에서 입 안 가득 말풍선이 쏟아져 나온다. 말로 하는 설명은 나중 일이니, 눈으로 일단 감상하라는 듯하다. 장난스럽게 보이는 작품 안에 작가가 숙고 끝에 설정한 고유의 논리와 시스템이 존재하기에 흥미롭다. 전시는 7월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