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 하는가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유통업계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지인 A씨를 만났다. 부쩍 말이 없던 A씨는 술이 몇 순배 돌자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며 속마음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새벽 별 보며 출근하고 다음 날 별 보며 퇴근하는 게 일상이 된지 3년째.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사나”라는 자조 섞인 질문을 아주 가끔씩 던져왔는데, 그 횟수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고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도 지칠 때가 있다. 가슴 한 켠에 사표를 품고 하루 하루를 버텨내는 게 직장인의 숙명이라고들 하지만 입에 풀칠하려고, 단지 그것만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자괴감에 빠지고 만다. A씨는 “하루 24시간 중 12시간씩 주7일 중 5일 이상을 ‘그저 살기 위해서’ 바치고 있다니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인간은 ‘의미’를 찾는 존재다. 존재의 의미, 삶의 의미. 그렇다 보니 삶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일의 의미 역시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또 “상황을 바꿀 수 있다면 그럴 용기가 있다면 이런 마음이 들지 않을 거란 걸 나도 안다. 그래서 내가 너무 밉다. 미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고백도 했다. 그렇다. 우리는 깊은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 위기를 맞는다. 현실의 벽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걸 인식할 때마다 무력감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잔잔한 수면에 무심코 던진 돌멩이 정도의 파동이 거센 파도로 번지고 사람을 집어 삼킬 듯한 엄청난 폭풍우로 변한다.


지금은 힘들어도 버티면 괜찮아 질 거란 굳은 믿음이 있다면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희망 없는 고통은 의미 없는 법이다. ‘하루 하루를 버틴다’고 말하는 이들 조차 오늘을 버티면 내일이, 내일을 버티면 모레 더 나아질 거란 확신이 있어야 오늘을 버틸 힘이 생긴다. ‘일에서 무슨 의미를 찾느냐’고, ‘배부른 고민일 뿐’이라고 단언하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라는 질문을 한번쯤 던져 보지 않은 직장인은 없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잊고 지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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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스스로를 용기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기자는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자괴감이든 자기반성이든 간에 무언가 느끼지 않았나. A씨는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변화를 이끌어낼 준비가 된 것이다.

준비가 끝났다면 본격적인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일. 남들과 비교하는 걸 잠깐 멈추고 내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일. A씨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과정이다. ‘다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나만 아닌 것 같다, 혼자 뒤처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라게 한 건 A씨 본인이다. 불안감과 초라함을 스스로 안긴 장본인이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하찮은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 아니겠나.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대답하고 있지 못하는 건 아닌지 자기성찰이 필요한 순간이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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