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의 암울함을 말해주는 ‘사의 찬미’
“광막한 황야를/달리는 인생아/너는 무엇을/찾으려 왔느냐/이래도 한세상/저래도 한평생….” 우리나라 최초 소프라노 윤심덕이 1926년 발표한 ‘사의 찬미’(1926년 발표)다. 가사가 말해주듯 식민지 민족의 삶은 덧없고 암울했다.
194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해어화’의 시대 또한 암담했다. 기생 출신 가수인 연희(천우희)는 경성클럽 무대에서 ‘사의 찬미’를 부른다. “광막한 황야를~” 당대 최고의 작곡가 윤우(유연석)의 피아노에 맞춰 노래하는 그 모습이 자못 비장하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으로 꼽을 만하다. 연희가 가수의 꿈과 사랑을 동시에 얻게 되는 반면 이 영화의 주인공 소율(한효주)은 윤우에 대한 사랑도, 스타로서의 영광도, 연희와의 우정도 송두리째 잃게 되는 상실의 기점이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소율과 연희의 우정도 깨져
소율은 경성 대성권번에서 빼어난 미모에 뛰어난 춤과 노래 실력까지 겸비한 초특급 기생으로, 동료 기생인 연희와는 어릴 적부터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그러나 소율을 끔찍이도 사랑하던 윤우가 연희에게 빠져 마음을 바꾼다. 이제소율에게 연희는 ‘없어졌으면 좋을’ 존재가 돼버린다.
사랑의 배신을 당한 소율은 일제 권력자 경무국장의 여자가 돼 복수를 감행한다. 먼저 윤우가 작곡하고 연희가 부른 음반 ‘조선의 마음’에 발매불가 판정이 내려지게 만들고, 소율 자신도 대중가수로 데뷔한다. 그 후로도 소율은 배신을 응징하기 위해 연희와 윤우를 잔인하리만치 짓밟는다.
#일제 권력은 소율에게 ‘복수의 칼’을 주고
194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해어화’에서는 식민지경제의 단면이 드러난다. 기생집 사장이 경찰관에게 뒷돈을 슬쩍 찔러주는 장면, 일제 당국이 민간기업인 음반회사를 쥐락펴락하는 모습 등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경제에서 권력에 기생한 소율에겐 경제적 풍요와 복수의 칼자루를 쥐어 주었지만 연희와 윤우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만 안겼을 뿐이다.
#“식민통치가 산업화에 도움” 주장도
영화 밖 실제에서 식민지경제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학술적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크게는 일제가 상처만 남겼다는 ‘식민지수탈론’과 한국의 산업화에 도움을 줬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상반된 관점이 있다. 식민지수탈론은 내재적으로 발전하고 있던 조선사회가 일제에 의해 수탈당함으로써 발전을 방해받았다는 입장으로, 김용섭 등이 조선후기 자본주의 맹아 연구를 내놓으면서 힘을 얻은 논리다. 반면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안병직은 한국 자본주의를 이식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으로 보고 일제의 침탈로 일본과 조선 간의 무역이 촉진되고 일본으로부터의 자본 및 기술의 유입이 자유롭게 되어 한국의 산업화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일제에 대한 경험이 다르기 때문일까
일본 제국주의 침략과 지배라는 동일한 역사를 지녔는데, 누구는 그 지배가 남긴 건 상처뿐이라고 하고, 누구는 크나큰 도움을 받았다니 어찌 된 일인가. 일제 당시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에서 소율과 연희에게 일제 권력이 그토록 판이한 경험을 남겼듯이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분명해 해둬야 할 부분이 있다. 일제의 침략과 우리민족에 대한 폭압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식민지경제에서 일제에 편승해 누린 것이 많았다면 그에 대한 뉘우침은 있어야 한다. 영화 ‘해어화’에서도 경무국장의 애첩으로 몹쓸 짓을 했던 소율도 부끄러움을 알고 해방 이후 끝끝내 자신을 숨기고 은인자중하지 않았나. 1940년대 식민지경제에서 출세의 길을 접고 민족을 위한 ‘조선의 마음’ 작곡에 혼신을 다했던 윤우가 영화 속에서 외친 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이런 세상에서 출세하는건 죄악이다. 출세할수록 조선인을 짓밟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