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죽어가는 남편에게 다가가자 의사가 다급하게 말렸다. “가까이 가면 안 됩니다. 이제 그는 방사선 오염 덩어리입니다.” 하지만 임신 중이었던 여인은 소방대원이었던 남편에게 울며 다가가 입을 맞추고 손을 맞잡았다. 사랑의 대가는 너무 혹독했다. 이 여인은 자신의 건강과 아이의 목숨을 한꺼번에 잃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벨라루스의 여성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10년 넘게 체르노빌 핵참사 피해자들이 겪은 참상과 아픔을 생생하게 취재한 후 그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낸 소설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정확히 30년 전인 1986년 4월26일 오전1시24분. 구소련이었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음이 울렸다. 지금껏 ‘20세기 최악의 원전사고’로 불리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다. 당시 발전소가 전력통제시스템을 시험하다가 제4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우라늄·플루토늄·세슘 등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10톤 이상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핵 물질 방출량의 400배에 달한다. 이 폭발로 그 해 9월까지 29명이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6년 동안 8,232명 사망, 43만명이 암·기형아출산 등 각종 후유증을 앓았고 현재까지도 방사능의 폐해는 이어지고 있다.
원전 반경 30㎞ 이내 지역은 여전히 사람이 살 수 없는 데드존이다. 체르노빌에서 방사능 물질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3000년이 걸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4월26일 0시를 기해 활동했던 컴퓨터 바이러스 ‘CIH바이러스(범인 천잉하오의 약자)’가 ‘체르노빌 바이러스’로 더 잘 알려진 것도 이런 공포감에서 비롯됐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2011년 터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함께 인류에게 큰 고민을 안겼다. 상상을 초월한 위험성으로 핵발전 고수냐, 탈핵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만들었다. 그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은 체르노빌 참사처럼 ‘현재 진행형’이다. /이용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