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취약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밑그림을 내놓았다. 업황 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해운과 수주절벽에 부딪힌 조선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에 역량을 집중해 이른 시일 내에 결과물을 도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업종은 실기를 할 경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사즉생의 각오로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당장 다음주 중으로 한진해운의 조건부 자율협약 돌입 여부가 결정되고 오는 5월에는 현대상선의 채권단 지원 여부가 판가름 난다.
◇중소형 조선사 정리 불가피할 듯=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미 수년 전 해양플랜트 저가 수주에 따른 대규모 손실을 털어낸데다 최근에는 이익을 내고 있다. 어려운 것은 맞지만 엄연한 정상기업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주채권은행이 책임지고 경영정상화를 추진하라”고 강조한 것은 조선업황이 앞으로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에 “추가적인 인력 및 인건비 감축”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형 조선사들은 당장 2년 동안은 만들 배가 있지만 그후 수주는 부진하다. 선제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서는 2년 후 수주절벽에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다.
상황이 더 심각한 중소형 조선사들은 정리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STX조선은 올해 하반기 중 대외여건을 감안해 경영정상화 또는 회생절차 전환을 결정한다는 게 정부와 채권단의 판단이다. 삼성중공업과 경영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성동조선 역시 현재와 같이 신규 수주가 저조할 경우 근본적인 대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선주 양보 없는 해운 구조조정 무의미=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과 관련해 임 위원장은 “5월 중순까지 선주들이 최종 결정을 하지 않으면 동의하지 않고 후속조치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결국 5월 중순이면 현대상선이 채권단의 자율협약으로 갈지, 법정관리 수순을 밟을지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용선료 협상이 형식적으로 타결되더라도 실제 용선료 인하 수준이 미미하면 의미가 없다는 게 정부와 채권단의 입장이다. 채권단의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이 “채권단의 자금이 현대상선이 아닌 선주들에게 돌아가서는 현대상선은 살아날 수가 없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용선료 인하분을 추후 지급한다는 것을 채권단이 보증하라”는 일부 선주들의 요구에 대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도 분명히 전달할 방침이다.
다만 용선료 협상이라는 문턱을 넘을 경우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상선의 경영정상화에 가능한 한 모든 지원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상선이 속한 해운동맹 ‘G6’에 선박건조 지원을 포함한 현대상선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담은 협조요청공문(컴포트레터)을 전달했다. 최근 조건부 자율협약을 신청한 한진해운 역시 앞으로 용선료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만큼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 결과가 국적 해운사 2곳의 존폐를 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철강·유화·건설은 자율 구조조정=지난해 말 조선·해운과 더불어 정부가 취약업종으로 지정했던 철강·석유화학·건설업종은 업계 자율 구조조정 체제로 전환된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측면이 있지만 구조조정 시급도를 볼 때 조선과 해운에 견줄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더군다나 하반기 시행되는 기업활력제고법에 따라 시장 자율적으로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는 여력도 생긴다. 이들 업종에 대해서는 범정부 차원이 아닌 소관 부처 수준에서 구조조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세제를 포함한 자체 구조조정을 유도하기로 했다.
채권은행 주도의 좀비기업 정리는 업종을 불문하고 진행된다. 금융감독원과 은행은 6월 말까지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중 C등급은 워크아웃을 통한 고강도 체질개선 작업에 돌입하고 D등급은 법정관리를 통해 퇴출 수순을 밟는다. 중소기업 역시 하반기에 실시되는 신용위험평가 결과에 따라 옥석이 가려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