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불가피한 이유로 서류를 소실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른바 ‘자주점유 추정의 원칙’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자주점유 추정은 점유자가 부동산을 소유할 의사를 갖고 선의로 평온하게 점유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민법 규정이다.
대법원 제3부(주심 대법관)는 한국농어촌공사가 조모 씨를 상대로 “조씨 앞으로 설정한 토지의 소유권 등기를 한국농어촌공사로 이전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방법원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한국농어촌공사의 전신인 농업진흥공사는 광주호 건설을 위해 1984년 3월부터 조씨의 증조할아버지 명의로 돼 있던 전남 담양군 일대의 149㎡ 규모의 땅을 광주호 댐의 부지로 점유했다. 조씨는 한국농어촌공사가 당시 땅 주인이던 자신의 증조부가 아닌 또 다른 조씨에게서 이 땅을 매수해 적법하지 않게 점유했다며 2013년 본인 명의로 소유권 등기를 냈다.
1심은 한국농어촌공사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은 “토지 대장상 농어촌공사가 소유권을 취득했음을 뒷받침할 기재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며 “정당한 절차에 따라 협의 취득했다는 주장만 할 뿐 뒷받침할만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조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그러나 “2심 재판부가 들고 있는 사유만으로 자주점유 추정이 번복됐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또 다른 조 씨와의 매도증서, 영수증 등이 있어 공공용 재산취득절차가 적법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