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면적 30만㎡의 방대한 공간에 38만여점의 유물을 보관, 전시하는 세계적 규모의 박물관인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지난 2005년 경복궁 내에 위치한 중앙박물관이 이곳 용산으로 이동하면서 숱한 국보급 유물을 어떻게 안전하게 옮길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중앙박물관 건물이 이동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30만점의 유물을 경복궁에서 용산으로 안전하게 이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물 이전의 실무 책임을 맡았던 이영훈(60·사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회상이다.
이 관장과 직원들은 어떻게 하면 유물들을 안전하게 옮길지 고민했다. 수장고에 있는 모든 유물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우선 이동 중에 경찰의 호의를 받았다.
규모가 작은 유물들은 포장을 잘하면 훼손 위험을 줄일 수 있어 도난 사고만 조심하면 됐지만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유물은 이동 중에 훼손 가능성이 있었다.
이 관장은 이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로 조선 세조 때 만들어진 보물 2호 보신각종을 꼽았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이관, 보존돼 있는 이 종은 높이만 3m가 넘었다. 일반 차량으로 옮길 수 없어 트레일러를 이용해야 했다. 다행히 트레일러에 종은 잘 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종의 높이였다. 트레일러에 올라가자 안 그래도 높은 종이 더 커졌다. 경복궁에서 용산으로 오는 경로에는 전깃줄과 육교 등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트레일러에 탔던 이 관장은 “육교 높이가 아슬아슬했다. 다행히 인도 쪽으로 가니 걸리지 않았다. 전깃줄이 걸렸을 때는 막대기로 들어올리기도 하고 올리는 게 안 되는 상황에서는 끊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보신각종을 옮길 때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용산에 빨리 도착했다”며 “저한테 대놓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당시 관장이 빨리 왔다고 직원을 혼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하며 웃음을 보였다.
당시 새 박물관의 청사진을 처음 받았을 때의 기억도 이 관장에게는 생생하게 남아 있다. “솔직한 느낌은 가로 400m가 넘는 건물을 보고 뭐 이런 건물이 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컸어요. 박물관은 조금씩 증축해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한 번에 크게 지어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광복 60년 만에 개관한 새 중앙박물관이 처음부터 박물관을 위해 지은 최초의 건물이었다는 것 자체가 벅찬 일이었다. 경복궁 안에 자리 잡았던 박물관이 궁 밖의 독립적인 공간으로 나온 것도 그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이 관장은 “그런 의미에서 중앙박물관 이전을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우리 문화뿐 아니라 다른 문화를 아우를 수 있는 영역이 만들어져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박물관을 이전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보람도 있었다”면서 “개관 후 얼마 안 돼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는데 이촌역까지 줄을 서 있었다. 불평 없이 한 시간 이상 밖에서 줄을 서 계신 모습을 보니 너무 감동적이었다”며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