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루사리

0315A38 만파0315A38 만파




몇 해 전 이란에서 열린 올림픽 축구 예선전의 응원 문제를 놓고 한바탕 외교적 실랑이가 빚어진 적이 있다. 당시 원정 응원단에 참여한 ‘붉은 악마’ 여성 회원들의 경기장 입장을 이란 종교 경찰이 반대하고 나선 탓이다. 외교 채널까지 동원된 우여곡절 끝에 경기 내내 이슬람 복장을 벗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입장이 허용됐고 여성 응원단은 남성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 루사리 대신 태극기를 온몸에 두르고 열띤 응원전을 펼쳐야 했다.


루사리는 이란 여성들이 많이 착용하는 히잡의 일종으로 머리카락을 가리는 데 쓰이는 숄이나 스카프에 가깝다. ‘루’는 머리 혹은 얼굴을 의미하고 ‘루사리’는 머리 위에 놓는다는 뜻이다. 머리부터 발끝은 물론 눈까지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나 얼굴만 내놓고 몸 전체를 가리는 차도르, 눈썹 위까지 가린 채 얼굴만 드러내는 히잡 등에 비하면 비교적 관대한 편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란에서는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을 유혹한다고 해 공공장소에서는 외부로 드러내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기 때문에 외국인들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관련기사



이란을 찾는 여성 관광객들의 최대 고민도 스카프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머리에 꽁꽁 싸매는 방법일 것이다. 때로는 러시아 전통 스타일의 바부시카처럼 턱 아래로 질끈 묶어 쓰기도 하고 고무밴드로 머리를 질끈 묶는 방법도 동원된다. 실크로 만들어진 얇은 스카프 사용을 자제하는 대신 울이나 코튼 스카프를 사용하라는 것도 가이드북에 나와 있다. 출국에 앞서 거울을 보고 스카프를 매는 연습을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란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하얀색 루사리를 쓰고 세일즈 외교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박 대통령은 현지 율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고심 끝에 루사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최근에는 루사리가 패션코드로 등장하며 진홍색이나 연두색처럼 다양한 색상이 등장하고 있다. 신정(神政)일치 국가에 불고 있는 개방의 바람이 여심부터 먼저 사로잡은 셈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