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1시 경기도 고양시 덕양노인복지관 대강당. 1층과 2층을 가득 메운 어르신 400여명이 흥에 겨워 트로트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어느덧 ‘18세 순이’로 돌아갔고 할아버지들은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로 회춘한 듯했다. 무대를 휘어잡는 사회자의 유머와 위트에 연신 박장대소를 했다.
일찍 와서 자리를 잡았다는 주성선(79) 할머니는 “무대를 휘어잡는 저 사람이 회사 사장인 줄은 몰랐다. 마치 전국 노래자랑을 보는 것 같이 흥겹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날 행사는 국내 컴포트 슈즈(편안한 기능성 구두) 1위를 달리고 있는 바이네르가 마련한 ‘효도잔치’ 자리였다. 지난 2일부터 부산, 광주, 서울, 당진 등 전국 5개 지역에서 신명 나는 잔치를 벌이고 있다. 2007년부터 10년째로 고집스럽게 이어오고 있다. 효도잔치의 각본, 음향, 진행, 감독을 모두 책임지는 사람은 김원길(사진) 바이네르 대표다. 그는 이날만큼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체면도 권위도 모두 던져버리고 ‘시골장터 광대’로 변했다. 누가 봐도 촌스런 녹색 상의를 걸치고 선글라스를 쓰고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광대는 무대 맞은편에 있는 어르신들을 향해 “누나, 형님들, 제가 1년 전에 이 자리에서 강의를 하면서 어르신들에게 효도잔치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러 왔다”고 인사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게스트로 출연한 개그맨 김창준씨는 “김 대표와 절친이다. 그는 어르신을 공경하는 효자”라며 “장학사업을 하고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있다. 진정한 기업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역할 모델이 아니겠는가”라며 미소를 지었다.
광대는 이날 출연진들과 함께 ‘내 나이가 어때서’, ‘희망의 나라로’ 등을 부르며 어르신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선사했다. 정성스레 준비한 떡과 과일, 고급 가방은 덤이다.
마이크는 자주 고장이 났고 조명도 오락가락했지만 이날 효도잔치는 맨해튼 링컨센터의 클래식 연주보다 우아했고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 흥겨웠다.
바이네르 광대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돈을 많이 버는 기업, 돈을 많이 쟁여놓는 CEO로 남고 싶지는 않다”며 “사회에 아름다운 흔적과 달콤한 향기를 퍼트리는 회사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중졸이다. 집안이 가난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작은 아버지로부터 구두 무두질하는 것을 배우면서 구두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55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800억원을 겨냥하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회사로 키워냈다. 그는 “오늘날의 바이네르는 고객들이 만들어서 나에게 준 선물”이라며 “이제 고객과 사회에 내가 선물을 해야 할 차례”라고 말했다.
그는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다. 매년 5억원 이상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사회에 내놓는다. 옛날 자신처럼 집안이 가난한 골프 꿈나무들을 후원하고 있고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을 도와주고 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공연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온 김 대표는 “부산, 광주에 이어 3일 연속 효도잔치를 하고 있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다”며 “사회에 봉사하면 에너지가 다시 솟아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각박한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로 들린다.
/고양=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