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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부르는 유전자

당신의 유전자가 당신을 살인자로 만들 수 있을까?

ILLUSTRATION BY JAVIER JAENILLUSTRATION BY JAVIER JAEN


2006년의 어느 가을밤. 미국 테네시주 남동부 시골마을의 한 트레일러에서 브래들리 왈드럽이 걸어 나왔다. 별거중인 아내가 친구인 레슬리 브래드쇼와 함께 4명의 자녀를 그에게 데려다주러 막 도착한 참이었다. 그의 손에는 22구경 사냥총이 들려 있었다.

왈드럽은 차에서 내린 두 사람과 말다툼을 벌였고, 브래드쇼에게 8발을 발사해 살해했다. 아내는 도망쳤지만 칼과 정글도를 들고 쫓아온 왈드럽에게 붙잡혔고, 새끼손가락이 잘린 채 트레일러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왈드럽은 겁에 질려 있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리 와서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하렴.”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던 순간, 기적처럼 아내는 왈드럽의 손아귀를 뿌리치고 밖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변호인들은 유전자 변이가 살인 용의자 브래들리 왈드럽[위]의 폭력적 성향을 촉발했다고 주장했다. 배심원들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다.변호인들은 유전자 변이가 살인 용의자 브래들리 왈드럽[위]의 폭력적 성향을 촉발했다고 주장했다. 배심원들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3년 후 법정에 선 왈드럽은 범행 일체를 인정했다. 당시 술에 취해 있었고, 그날의 어떤 것도 자랑스럽게 생각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증거가 너무나 명백했기에 왈드럽이 1급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을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의 변호인 팀이 사형만은 면하도록 하고자 예상치 못한 논거를 펼쳤다. 이들은 왈드럽의 혈액 샘플을 테네시주 밴더빌트대학의 분자유전학 연구실로 보냈다. 특정 유전자를 찾아달라는 부탁과 함께였다. 예상대로 연자들은 왈드럽의 혈액을 분석, X염색체에 위치한 ‘모노아민 산화효소 A(MAOA)’의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다.

MAOA는 도파민, 세로토닌 등 주요 신경전달물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만일 MAOA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이 신경전달물질들이 뇌 속에 축적돼 충동제어에 어려움을 겪고, 폭력성과 분노감이 커진다. 변호인은 이런 이유를 들어 왈드럽의 범행은 일정부분 유전자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폭력성 및 반사회적 행동과 관련된 유전자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MAOA다. 유전학자들은 20여 년 전부터 MAOA 결핍이 폭력적 행동과 유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언론들이 MAOA 결핍 유발 유전자를 ‘전사 유전자(warrior gene)’라 부른지도 10년이 넘는다.

정신질환의 원인 역시 유전자와의 관련성이 크다. 지난 1월에도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정신분열증의 원인 유전자를 규명해 정신보건학계에 충격을 줬다. 이 유전자 변이로 인해 청소년기와 초기 성년기에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뇌 전두엽의 시냅스가 과도하게 가지치기 되면서 집중력, 충동 제어 능력이 손상돼 정신분열증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물론 정신분열증 환자 중 폭력성이 나타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다만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폭력적 성향을 띨 확률이 일반인의 2~3배에 달한다는 게 정신건강 업계의 조심스러운 지적이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총기 난사와 보복운전 뉴스들을 지켜보며 과학자, 법집행 기관, 정치인, 정신보건 전문가, 대중들은 어떻게 해야 이 같은 사건들을 막을 수 있을지 묻고 있다. 폭력적 성향의 인물들을 사전에 밝혀낼 방법이 없을까. 연쇄살인범과 총기 난사범, 묻지마 살인범, 그리고 지난 2월 우버 택시를 운전하며 4시간 동안 총기를 난사해 6명을 살해한 제이슨 달튼 같은 사람들 사이에 어떤 유전적 유사성이 있지는 않을까.

사실 이는 꽤 불편한 질문이다. 혹자는 이것이 독일 나치가 자행했던 골상학이나 우생학과 다를 바 없는 발상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전학자들이 인격적 특성과 병리학을 둘러싼 비밀의 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행동주의보다는 유전자 결정론에 더욱 힘이 실리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때 우리는 알코올 중독이 인격적 결함 때문이라 믿었다. 그러나 과학계가 이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발견하면서 이제는 알코올 중독을 개인적 문제라기보다 질병의 하나로 본다. 또한 우리는 뇌기능에 오류를 일으켜 불안 행동을 촉발할 수 있는 유전자의 존재도 받아들였다. 폭력성도 유사한 맥락이다. 과학계는 폭력성 유발 유전자의 존재 증거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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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사진과 같은 뇌 스캔을 통해 사이코패스들은 충동제어와 감정처리를 담당하는 뇌 영역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아래의 사진과 같은 뇌 스캔을 통해 사이코패스들은 충동제어와 감정처리를 담당하는 뇌 영역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뉴멕시코대학의 신경과학자 켄트 키엘 교수는 매일 아침 뉴멕시코주의 작은 마을인 그랜츠에 위치한 웨스턴 뉴멕시코 교도소로 출근한다. 이곳 한쪽에 세워놓은 작은 트레일러가 그의 일터이자 연구실이다. 이 트레일러에는 220만 달러짜리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스캐너가 설치돼 있는데 이를 이용해 440여명의 재소자 중 살인범과 강간범, 방화범 등 강력범죄자들의 뇌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연구에 대한 키엘 교수의 열정은 남다르다. 과거 그가 거주했던 워싱턴주 타코마의 집 근처에 희대의 연쇄 살인마 테드 번디가 살았었기 때문이다. 1975년 테드 번디가 체포되고, 20여년에 걸쳐 36명이 넘는 여성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자 기엘 가족을 포함한 이웃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키엘 교수도 이렇듯 작고 조용한 동네에서 어떻게 테드처럼 잔학무도한 사람이 자나날 수 있는지 궁금해 했다. 이후 그는 25년간 해답을 찾으려 애썼고, 지금은 정신분열증과 사이코패스에 관한 최고의 신경과학 연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들은 심각한 감정적 분리에 시달린다. 때문에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잘못된 행동을 뉘우치는 성향도 약하다. 키엘 교수의 연구 결과, 미국 교도소의 재소자 가운데 약 16%가 사이코패스였다. 미국 전체 인구로는 약 1%가 사이코패스로 추정된다.

“이 점에서 사이코패스는 폭식증만큼 흔한 질병입니다. 하지만 진단은 훨씬 어렵죠.”

사이코패스가 사회 문제가 되는 것은 폭력적 성향 탓이다.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은 40세 이전에만 평균 4차례나 폭력으로 유죄판결을 받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쌍둥이를 대상으로 이뤄진 한 연구에선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에 유전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이코패스의 원인이 유전자에 있다는데 동의하는 전문가는 아직 소수다. 이런 소수에 속하는 키엘 교수는 감정의 생성과 충동 제어, 집중력 유지에 관련된 변연 피질과 부변연계 피질의 결함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뉴멕시코대학의 켄트 키엘 교수는 기능성자기공명영상 (fMRI) 장치가 설치된 이동식 트레일러를 이용해 교도소에서 살인범 등 강력범의 뇌를 분석, 킬러 유전자를 찾고 있다.미국 뉴멕시코대학의 켄트 키엘 교수는 기능성자기공명영상 (fMRI) 장치가 설치된 이동식 트레일러를 이용해 교도소에서 살인범 등 강력범의 뇌를 분석, 킬러 유전자를 찾고 있다.


그의 실험에서 재소자들은 fMRI에 머리를 넣고 뇌를 스캔 받는다. 이때 키엘 교수는 ‘직장에서의 절도’ 같은 문구나 자동차 사고 현장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의 도덕적 불쾌감을 느끼는지 묻는다. 재소자가 자신의 판단을 결정하는 순간 뇌의 뉴런이 발화하고, 컴퓨터는 발화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활성화 된 뇌 영역을 기록한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경우 동정, 감정과 관련된 뇌 영역인 편도체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반면 사이코패스들은 편도체의 활동이 적고, 논리를 처리하는 영역이 활성화된다.

“개중에는 의도적으로 저를 속이려 드는 재소자도 있습니다. 자신의 진짜 생각과 상관없이 도덕적 정답을 말하거나 제가 듣고 싶어 한다고 여기는 답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뇌가 활성화되는 영역을 보면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죠.”

지금껏 키엘 교수는 2개 주, 8개 교도소의 재소자 4,000여명의 뇌 이미징 데이터를 수집했다. 현재 이를 활용해 세계 최대 규모의 법의학 신경과학 자료실을 구축 중이다. 그간의 연구에 의하면 사이코패스들은 그가 주목하고 있는 변연 피질과 부변연계 피질의 회백질이 정상인보다 적고, 편도체도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말해 그들의 뇌는 정상인과 달라요. 적어도 이 차이를 만든 요인의 50%는 유전자입니다. 신경과학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는 놀라운 일도 아니에요.”

그의 연구성과는 문제 아동의 부모들이 조언을 구할 만큼 꽤 널리 알려져 있다.

“일주일에 최소 한 통씩은 이메일이 옵니다. 다들 자신의 아이가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묻죠. 그들에게 저는 마지막 희망과도 같습니다. 안타까운 건 아직까지 부모들의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해줄 답을 줄 수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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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희대의 연쇄 살인마 테드 번디, 무차별 총기 난사로 6명을 살해한 우버 택시기사 제이슨 달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애덤 란자. 유전자 스크리닝이 이들의 범행을 예방할 수 있었을까?왼쪽부터 희대의 연쇄 살인마 테드 번디, 무차별 총기 난사로 6명을 살해한 우버 택시기사 제이슨 달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애덤 란자. 유전자 스크리닝이 이들의 범행을 예방할 수 있었을까?


폭력성의 유전적 근원을 찾는 현대적 연구는 1978년 네덜란드 동부 네이메헌의 한 대학병원에 여성 한명이 나타나면서 시작됐다. 그 여성은 자신의 가족, 정확히 말해 폭력 범죄를 저지른 여러 명의 남성 형제와 아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자 이 병원을 찾았다.

그들 중 두 명은 방화를, 한 명은 여동생을 강간하려 했다. 직장 상사를 자동차로 치어 죽이려 했거나 여성 가족을 칼로 위협해 옷을 벗기려 한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이들이 동일한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친척 한 명이 1962년 작성한 이 가문의 폭력범죄 내력에 따르면 남성들의 폭력성은 무려 1870년대부터 이어져 왔다.

병원 연구팀은 10년 이상의 분석을 거쳐 문제의 원인을 특정했다. 폭력 범죄를 저지른 남성 모두에게 X염색체 돌연변이가 발견된 것이다. 연구팀은 이 돌연변이가 MAOA 유전자의 이상을 초래해 폭력적 성향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MAOA 유전자는 X염색체에 위치하는데, 남성은 X염색체가 하나뿐이라 이상이 생기면 큰 타격을 받는다. 이와 달리 두 개의 X염색체를 가진 여성은 하나에 문제가 생겨도 나머지 하나가 보완해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유전적 문제를 아들에게 대물림시킨다.

이후 다수의 연구가 이어지면서 폭력적 행동과 관련된 유전적 위험 요인들이 발견됐다. 예컨대 2011년 독일 연구팀에 의해 단백질을 코딩하는 ‘카테콜-O-메틸전달효소(COMT)’ 유전자의 변이와 살인행동의 연관성이 밝혀졌다. 참고로 COMT도 MAOA와 마찬가지로 뇌가 만든 마약이라 불리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제어에 관여한다.

2015년 핀란드의 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공동 연구에서도 폭력 범죄자들은 MAOA 또는 CDH13 (Cadherin 13) 유전자의 변이를 가진 사례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CDH13은 뇌세포 사이의 신호체계를 지원하는 단백질의 코딩 유전자다.

이들 유전자의 변이가 자폐증, 정신분열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와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는 이외에도 많다. 미국 분자정신의학지에 게재된 한 논문에서는 폭력적 범죄 행위를 이끄는 유효 인자로 CDH13 유전자의 변이와 세포의 기능장애를 지목하기도 했다.


많은 과학자와 윤리학자들은 이처럼 생물학적 요인이 폭력성의 근원이라는 시각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들은 유전자의 발현에는 환경적 요인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유방암 발병 유전자를 지녔다고 반드시 유방암에 걸리지 않듯 정신분열증 발병 유전자를 가진 모든 사람이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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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존스 홉킨스대학 산하 리버 뇌개발 연구소의 다니엘 와인버거 소장도 이에 동의한다.

“유전자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매초마다 모든 인체 세포의 모든 활동에 관여하는 프로그램과 같습니다. 부모에게 작은 결함을 유전 받으면 다소 문제가 생길 수는 있어요. 하지만 반드시 정신질환을 겪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 결함은 ‘숙명’이 아닌 ‘위험성’이에요.”

실제로 왈드럽과 동일한 변이된 MAOA 유전자를 가졌음에도 평생 아무도 해치지 않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이미 법정은 유전자가 범죄의 원흉이라는 주장에 대한 윤리적·과학적 논쟁의 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미국 포드햄대학 신경과학·법률센터의 데보라 데노 박사에 의하면 2011년 한 해 동안 범죄 피의자측 변호인이 법정에서 유전자를 언급한 횟수가 1994년 대비 80배나 늘었다.

“변호사들은 무죄를 입증할 증거 대신 범죄행동을 설명할 타당한 구실을 찾는데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2015년 핀란드의 재소자 9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연구에서 연구팀은 CDH13 유전자의 변이가 폭력 범죄의 유효 인자일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2015년 핀란드의 재소자 9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연구에서 연구팀은 CDH13 유전자의 변이가 폭력 범죄의 유효 인자일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왈드럽 사건에서 배심원단은 사형 대신 종신형을 선고했다. 킬러 유전자를 이용한 변호 전술이 통한 셈이다. 한 여성 배심원은 왈드럽의 유전 정보가 판결에 영향을 미쳤는지 묻는 언론의 질문에 “확실히 영향을 줬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데노 박사는 법원과 언론이 유전자 변이의 영향, 그리고 폭력성과의 연관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피력한다. 심리학, 사회학, 통계학을 아우르는 학문인 행동유전학에서는 인간의 행동이 유전자에 더해 환경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은 산물로 본다는 이유에서다.

“유전자가 행동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영양실조나 사회·경제적 갈등, 낮은 교육 수준 같은 환경적 요소들은 성인기의 행동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인자의 하나다. 아동기의 학대가 성인기에 폭력적 성향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심리학계에선 이미 오랜 정설이다. 2002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연구에서도 부모로부터 원칙 없고, 강압적이며, 처벌 위주의 교육을 받은 남자아이는 반사회적 인격을 소유하거나 폭력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환경적 요인도 인간 행동을 100%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학대를 당했다고 모두 폭력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유전자 변이가 폭력성을 높인다는 생각은 분명 흥미로운 연구주제예요. 그렇지만 그것이 폭력성이 유일한 혹은 근본적 원인은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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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의 어느 날 오후, 코네티컷대학 파밍턴 헬스센터의 아동·청소년 PTSD 임상 심리학자 줄리안 포드 박사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포드 박사는 애덤 란자와 그가 2012년 12월 저지른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114페이지 분량의 공식 보고서 작성을 도왔던 인물이다.

당시 란자는 모친을 살해한 뒤 학교에 난입해 어린이 20명과 교직원 6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자살했다. 주정부 검시관은 란자의 뇌 일부를 채취해 코네티컷대학 유전학자들에게 DNA 분석을 의뢰했는데, 이것이 대량 살인범의 게놈이 연구된 최초의 사례다.

파퓰러사이언스의 공식 요청에도 불구하고 해당 검시관과 코네티컷대학, 유전학자 누구도 연구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정신질환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찾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고 추정될 뿐이다.

어쨌든 란자는 어린 시절 불면증에 시달렸고, 언어 능력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사회적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5학년 때 과제로 제출한 소설 ‘할머니의 빅 북(The Big Book of Granny)’에는 나이든 여성이 아이를 총으로 쏘는 내용이 나온다.

결국 란자는 아스퍼거 증후군, 불안장애, 강박장애 진단을 받았고 그의 모친은 정신과 의사의 권고를 따라 란자를 자퇴시키고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폭력성과 무관하지만 이로 인해 폭력적 생각과 행동이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은 듯하다. 이 발달 장애는 자폐증과 달리 언어 발달 지연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포드 박사도 란자의 감정적 혼란을 눈치 챈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청소년기는 취약한 시기다. 호르몬의 급증에 따른 극심한 감정 기복 때문이 아니다. 정신질환이 발병하기 가장 쉬운 시기다. 정신분열증도 청소년기 및 성인기 초기에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했듯 올 1월 하버드대학 스티븐 맥캐롤 박사팀은 이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유력한 유전자를 발견했다. 인간의 뇌는 성장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시냅스를 절단, 뉴런 간의 비효율적 연결고리를 끊는다. 전전두엽 피질에서 진행되는 이 과정을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은 정신분열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때문에 청소년기의 적절한 치료가 매우 중요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종종 증상이 표출된 10대 소년들조차 주치의의 신경정신과적 전문지식이 없어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청소년들의 정신질환을 조기 진단·치료하기 위한 호주의 ‘헤드 스페이스’ 진료센터.청소년들의 정신질환을 조기 진단·치료하기 위한 호주의 ‘헤드 스페이스’ 진료센터.


그는 한 가지 성공사례를 말해줬다. 2006년 시작된 호주 국립 청소년 정신건강 협회의 ‘헤드스페이스(headspace)’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정신질환의 조기진단을 목표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호주 전역의 접근이 용이한 곳에 80여개의 진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쇼핑몰에도 입점해 있어요. 따뜻한 색상으로 실내를 꾸미고, 편안한 분위기의 가구를 배치함으로써 병원의 느낌을 최소화시켰죠. 많은 국가에서 이를 본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제는 란자처럼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이다. 과연 유전학적 스크리닝이 도움이 될까.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다. 또한 맥캐롤 박사를 포함한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미래에도 가능하리라 생각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유전학을 질병 진단에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식이 없습니다.”

즉 앞으로 우리가 살펴보고, 찾아내야 할 사항은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혹자는 사생활 침해와 사회적 낙인을 우려하고, 혹자는 특정인이 폭력성 유전자를 갖고 있음을 밝혀내더라도 뭘 할 수 있냐고 반문한다.

이에 대한 맥캐롤 박사의 대답은 명확하다. 폭력성의 유전자 마커 연구가 잠재적 범죄자의 선별에 실패하더라도 폭력과 그 근원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이 알수록 예방을 위해 더 많은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폭력성의 유전적 원인을 찾는 연구는 쉽사리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존스 홉킨스대학 다니엘 와인버거 소장의 판단이다. 현재 그는 숨진 PTSD 환자의 뇌 표본을 이용해 PTSD의 원인을 분자 단위에서 규명하려 하고 있다.

“정신질환의 외형적 모습을 파악한지는 100년이나 됐지만 그 근본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에요. 다행히 오늘날의 유전학은 10년 전만 해도 공상과학으로 치부되던 것들을 알아낼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다만 와인버거 소장도 앞으로 발견해낼 과학적 사실에 대한 사회적 반응에는 우려를 표명한다.

“모든 사람의 게놈에는 다양한 질병에 대해 서로 다른 수준의 발병 위험이 내재돼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주홍글씨를 새길 만큼 질병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MAOA - MonoAmine Oxidase A.

골상학 (骨相學, phrenology) - 두개골의 크기와 형태로 인간의 성격과 심리적 특성, 운명 등을 추정하는 학문.

우생학 (優生學, eugenics) - 인류의 유전학적 개량을 목적으로 한 응용 유전학의 한 분야. 우수 형질 보유 인종의 증가와 열악한 형질을 보유한 인종의 증가 방지를 표방하는데 나치에 의해 유대인 학살과 같은 정치적 목적에 이용됐다.

COMT - Catechol-O-MethylTransferase.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LOIS PARSHLE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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