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경제난이 부른 '극단·막말의 정치'...세계 자본주의 뒤흔든다

지구촌 유권자들 "기존 정당 생활고 해결 못해"

포퓰리즘 선동하는 아웃사이더 정치인에 환호

유럽 '反EU' 정당 득세...中 '신마오주의' 바람...

"정치리스크에 자본주의 20년전으로 후퇴" 경고

지난달 24일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 1차 투표를 이틀 앞두고 극우정당인 자유당(FPOe)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수도 빈에서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를 기다리며 환호하고 있다. 유럽에서 경제난과 맞물려 불고 있는 국수주의 정당 인기에 힘입어 호퍼 후보는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결선에 안착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반면 전통적 주류 정당인 사회민주당·국민당 소속 후보들은 각각 4·5위를 차지하며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빈=EPA연합뉴스지난달 24일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 1차 투표를 이틀 앞두고 극우정당인 자유당(FPOe)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수도 빈에서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를 기다리며 환호하고 있다. 유럽에서 경제난과 맞물려 불고 있는 국수주의 정당 인기에 힘입어 호퍼 후보는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결선에 안착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반면 전통적 주류 정당인 사회민주당·국민당 소속 후보들은 각각 4·5위를 차지하며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빈=EPA연합뉴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난이 장기화하면서 극단적인 ‘포퓰리즘’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구세주를 찾던 유권자들은 기존 정당이 생활고를 해결하지 못하자 막말과 분열, 증오를 선동하는 ‘아웃사이더’ 정치인에 환호하고 있다.

정치적 논쟁도 좌우 간 정책 대립이 아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충돌로 번지면서 정치 리스크에 글로벌 경제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특히 대중의 분노를 등에 업고 이민자 차별, 보호무역주의, 반세계화, 과거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 등이 기승을 부리면서 자본주의 질서가 1990년대 외환위기 수준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난이 극단·막말 정치의 씨앗=최근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칼 아이컨은 “미국의 많은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자본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가장 큰 문제인 소득격차를 고치지 않는다면 미국에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좌파 성향이기는커녕 자본주의 첨병인 아이컨조차 양극화가 ‘트럼프 신드롬’을 불러왔다고 진단한 것이다. 실제 퓨리서치센터가 1999~2014년 229개 도심지역을 조사한 결과 중산층의 가계소득이 감소한 곳은 83%에 이르렀다. 또 조사 대상 지역의 87%에서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중산층 비중이 이전보다 줄었다. 분노한 저소득·저학력·백인 유권자들은 ‘부자 증세-중산층·서민 감세’, 보호무역주의라는 트럼프의 공약과 이민자·소수계·여성을 향한 희생양 찾기에 열광하고 있다.

이미 상당수 국가의 유권자들은 막말과 극단적 정책을 사회 위험요소가 아닌 ‘강력한 지도자’에 필요한 자질로 치부하고 있다.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다바오시장은 범죄 혐의자들을 재판도 없이 처형한 이력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여성 성폭행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일삼고도 대통령에 당선됐다. 족벌 정치와 빈부격차, 치안 불안에 대한 불만을 효과적으로 자극했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는 아이티 난민을 ‘쓰레기’라고 부른 자이르 볼소나루 의원이 2018년 대선 유력 후보다.


유럽에서도 경제난과 맞물려 난민 수용, 반유럽연합(EU)을 앞세운 국수주의 정당이 활개를 치고 있다. 헝가리·폴란드에서는 이미 반(反)EU 정당이 집권했고 오스트리아·독일·네덜란드·핀란드에서도 극우 바람이 거세다. 프랑스의 경우 내년 대선에서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 당수가 결선투표까지 갈 공산이 크다. 중국에서는 문화혁명 시대에 유행하던 노래가 인기를 끄는 등 ‘신마오주의’ 바람이 불면서 시진핑 지도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경기 둔화와 부의 불평등 확산에 사회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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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20년 전으로 후퇴 위험=역설적으로 이들 포퓰리즘 정치는 가뜩이나 회복세가 느린 글로벌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반이민정서가 강한 영국은 경제난 가중이 예고되는데도 다음달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실시할 방침이다. 마크 카니 영국중앙은행(BOE) 총재는 12일(현지시간) “브렉시트 때는 일자리 감소, 물가 상승 등으로 앞으로 3년간 경제성장률이 연간 0.2%포인트씩 낮아지면서 기술적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고 EU 회원국의 도미노 이탈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필리핀의 경우 두테르테의 당선이 국가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킴 엥 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아태지역 담당 선임이사는 “두테르테 집권으로 전임 아키노 정부가 이룩한 정치적 안정이 흔들릴 것”이라며 “정치적 대립이 재발하면 국가 신인도 개선 추세가 꺾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브라질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 사태 파장이 어디로 튈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캐럴린 윌킨스 캐나다중앙은행(BOC) 부총재는 “세계 잠재 성장률이 10년 전보다 낮아진 가운데 지정학적 정치 리스크가 경제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보호무역주의와 반세계화 바람이 거세지면서 글로벌 경제가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가령 트럼프가 공약대로 중국·멕시코 상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할 경우 중국도 무역보복에 나설 게 뻔하다.

오우스메네 만뎅 전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는 “1980~1990년대 중남미 권위주의 정권과 베를린 장벽 붕괴(1989년) 이후 진행되던 세계화가 중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포퓰리즘에 민주주의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두테르테가 ‘취임 6개월 내 범죄 근절’을 위해 계엄령 선포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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