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아이비리그 가야죠" 초등 입학하면 억대 골프·펜싱 과외

‘요람에서 무덤까지’ 교육 환상에 엇나간 부모들

<3> 귀족스포츠에 빠진 사람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둔 주부 주은미(36) 씨는 자녀의 골프 교육비로 올 한해만 1억원을 쓸 생각이다. 연간 골프 기본 강습비만 3,500만원, 해외로 전지훈련 갈 때마다 1,000만원 이상 들기 때문에 연간 1억원은 소요된다. 체육 특기자로 키울 계획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 씨는 “체육 특기자를 고려하는 건 전혀 아니지만, 아이비리그 정도 가려면 골프 코스는 필수”라며 “귀족 스포츠가 명문대로 가는 골든 티켓”이라고 귀띔한다.


최근 초등학교 학부모 사이에 펜싱·골프·아이스하키 등 ‘귀족 스포츠’ 교육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귀족 스포츠는 연간 비용이 최소 수천만원에 달해 진입 장벽이 높은 데다 각종 대회에 참가할 경우에도 경쟁률이 낮아 학부모 사이에서 해외 명문대 진학을 위한 필수 스펙으로 꼽힌다. 이러한 움직임은 상류층 매너를 자녀가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려는 부모들의 욕구와도 맞물려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고급 문화 취향’을 일종의 스펙으로 인식하고 어린 자녀에게 귀족 스포츠를 교육시키는 것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더 나아가 우월한 계층으로 자리 잡겠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쟁률 낮아 대회 입상 쉬운 ‘귀족 스포츠’

명문대 진학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아

지난 13일 기자가 찾은 한남동의 H스포츠센터는 어린 자녀를 동반한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곳에서 펜싱을 가르치는 김휘남(32·가명) 코치는 “초등학교 학부모 10명 중 8명이 외국 명문대 입학 전형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방문한다”고 전했다. 펜싱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한 초등학생은 현재 40여명. 이 중 90% 이상이 국제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중고등학교때 국제학교를 거쳐 해외 대학에 진학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김 씨는 “펜싱 국제 대회에 입상한 경력이 있을 경우 SAT 점수가 2,100점밖에 안 나와도 아이비리그에 합격한다. 못해도 국내 명문대는 갈 수 있다”며 “지인의 소개로 알음 알음 찾아오는 학부모들이 대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수업료는 1시간에 10만원 선인데, 주 2회 정도 1~2년만 레슨을 받으면 메달(8강 이내 진출)을 따는 건 어렵지 않다”며 “미국 대학에 진학하려면 미국 대회를 나가면 된다”고 조언했다.


‘귀족 스포츠=고급 문화자본’

관련기사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히게 하려는 게 목표

자녀에게 고급 문화 취향을 교육시키려는 부모의 열망이 높아지면서 귀족 스포츠 열풍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릴 때부터 신체에 각인된 문화와 성인이 된 후 체득한 문화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부모의 인식 때문에 자녀들의 습득 능력이 향상되는 초등학생 때부터 스포츠 매너를 가르치는 것이다.

김소희 서울여대 교육심리학과 교수는 “고가의 스포츠라는 건 희소 가치가 높다는 얘기”라며 “배운 사람끼리 친화적인 그룹이 형성되고 못 배운 그룹과 보이지 않는 선이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소수가 향유하는 문화를 선호하는 현상은 사회로부터의 인정 욕구와 연관성이 높다는 해석도 내놨다. 김 교수는 “대중이 특별하다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도 자신의 자녀들이 이를 체화하도록 강제하려는 욕구가 커진다”며 “일례로 승마나 펜싱을 누구나 접할 수 있다면 굳이 교육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비는 대부분 조부모 지갑에서…

‘개천서 용된 부모’는 강압적인 경우 많아

매달 수천 만원이 드는 교육비는 조부모가 감당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직 맞벌이 부부라고 해도 이 정도 거액을 지속적으로 지불하는 데는 부담이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 전문가들은 부담을 떠안고 무리하게 교육시키는 경우 아이의 개성과 흥미를 고려하지 않은, 강압적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김 교수는 “개천서 마지막 용이 된 부모 세대는 고급 문화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월해 보이는 일부 사례를 일반적 현상으로 오판하고 자녀한테 강요하는 것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일한 경험을 해도 그것을 어떻게 느끼며 자연스럽게 내 것으로 체화할지를 가르쳐 주느냐가 아이의 본질적 태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최근 일부 청소년에게서 나타나는 착취적 성향이나 과도한 자기애 등 부작용은 그릇된 교육관을 가진 부모가 만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나영·정수현기자 iluvny23@sedaily.com

김나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