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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 영화&경제] (29) ‘로마의 휴일’과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오드리 헵번을 일약 최고의 스타에 오르게 한 ‘로마의 휴일’은 1953년 유럽통합의 기운이 움트던 시대상황 속에서 제작됐다. /출처=네이버영화오드리 헵번을 일약 최고의 스타에 오르게 한 ‘로마의 휴일’은 1953년 유럽통합의 기운이 움트던 시대상황 속에서 제작됐다. /출처=네이버영화




2016년 6월 23일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실시되는 날이다. 브렉시트(Brexit)란 ‘Britain(영국)’과 ‘exit(이탈)’의 합성어. 만에 하나 영국 국민이 EU 탈퇴를 선택한다면, 영국은 물론 유럽과 전 세계 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1953년 제작된 영화 ‘로마의 휴일’의 주인공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2016년의 이런 상황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크게 실망할 것 같다. 영화 속 기자회견에서 “(유럽의) 연방제가 유럽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느냐”는 물음에 “유럽의 긴밀한 유대를 이끄는 거라면 찬성한다”고 답했으니 말이다.

한 유럽왕국의 공주 앤은 유럽국가의 유대강화라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한 외교사절로 로마를 찾았다.  /출처=네이버영화한 유럽왕국의 공주 앤은 유럽국가의 유대강화라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한 외교사절로 로마를 찾았다. /출처=네이버영화


#‘진실의 입’ 잊지못할 명장면

앤 공주의 답변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유럽통합에 대한 열망이 싹트던 2차 대전 직후의 시대상황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유럽공동체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베르 슈망(프랑스 외무장관)은 1950년에 전략자원인 석탄과 철강의 공동관리를 제안하며 유럽통합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52년 이탈리아와 독일을 비롯한 6개국이 마침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출범시키면서 유럽은 통합에 대한 희망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ECSC 출범의 축제 분위기가 영화에 반영된 것일까. ‘로마의 휴일’은 경쾌하다. 앤과 미국인 기자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가 오토바이를 타고 로마 거리를 달리는 장면, 디너 파티에서 악당들과 벌이는 난투극, 특히 진실의 입이라 불리는 석상에 손을 넣었다 빼면서 손이 잘린 듯 능청을 떠는 브래들리의 장난에 기겁하는 앤의 모습은 잊지못할 명장면으로 꼽힌다.

진실의 입 앞에선 공주와 기자.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출처=네이버영화진실의 입 앞에선 공주와 기자.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출처=네이버영화


#공주와 기자의 운명적 만남


공주와 기자의 운명적인 만남은 앤의 호기심 어린 일탈에서 비롯됐다. 빡빡한 로마방문 일정에 갑갑증이 난 앤 공주는 어느날 밤 모두가 잠든 사이 침실을 몰래 빠져나온다. 처음 본 로마의 밤거리가 너무도 신기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는데, 아뿔싸 침실 탈출 직전에 먹은 수면제의 약효가 퍼져 거리에서 잠이 들고 만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브래들리는 노숙하는 숙녀를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집에 재운다. 이튿날 그녀가 앤 공주임을 알게 된 브래들리는 희대의 특종을 건지게 됐다며 환호성을 지른다. 그리고는 로마 곳곳을 공주와 누비면서 몰래 취재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그러나 어느새 두 사람에게 사랑이 싹트면서 공주와 기자에겐 생각지 않았던 변화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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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함께 탄 두 사람의 모습이 더 없이 다정해 보인다.  /출처=네이버영화오토바이를 함께 탄 두 사람의 모습이 더 없이 다정해 보인다. /출처=네이버영화


#브렉시트, 문제는 돈

영화에서 앤 공주는 유럽의 연대가 경제문제 해결에 유익하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2016년 현실 속 영국에서는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 브렉시트의 대두에는 역시 돈 문제가 얽혀 있다. 우선 영국은 독일 다음으로 많은 EU 분담금을 내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영국 국민들이 많다. 또한 북유럽식 복지 시스템을 갖춘 영국으로 이민이 늘어나면서 국가 재정을 잠식하고 일자리를 뺏는다는 불만이 크다.

물론 영국의 EU 잔류를 희망하는 목소리가 아직은 우세하다.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 탈퇴는 시계를 국수주의가 경쟁하던 시대를 되돌려 놓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치명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독일 바텍스만재단은 브렉시트가 결정될 경우 영국이 거대한 유럽시장을 잃으면서 GDP의 14%를 상실할 뿐 아니라 외국인의 영국 직접투자가 매년 GDP의 33% 이상 하락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자 브래들리는 애초 공주를 특종을 위한 이용대상으로 여겼으나 사랑이 싹트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출처=네이버영화기자 브래들리는 애초 공주를 특종을 위한 이용대상으로 여겼으나 사랑이 싹트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출처=네이버영화


#덴시트·첵시트 우려까지

오는 6월23일 영국 국민은 어떤 선택을 할까. 투표날이 가까워지면서 미국의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브렉시트를 부추기는가 하면, 히틀러에 빗대 유럽통합을 조롱하는 궤변이 영국 내부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러다가 정말 브렉시트에 덴시트(덴마크의 EU 탈퇴)·첵시트(체코의 EU 탈퇴)까지 이어져 유럽이 분열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더욱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앤 공주가 남긴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국가 간 친선관계에 대한 전망’에 대한 기자의 물음에 그녀는 “인간 관계에 믿음을 갖듯이 모든 걸 믿는다”고 답했다. 브렉시트 투표를 앞둔 2016년의 영국 국민에게도 앤 공주는 같은 말을 건넬 것만 같다. /문성진기자 hnsj@sed.co.kr

문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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