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형 조선사 영업담당자가 전하는 중국의 저가 수주 실상이다. 중국 조선소들의 저가 공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심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발주 가뭄이 지속되면서 중국 조선소들도 존폐 위기에 몰리자 채산성보다는 물량 확보에 급급해 저가 수주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중국 진하이중공업의 수주 금액은 조선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노르웨이 선주로부터 30만톤급 초대형유조선(VLCC)을 척당 7,800만달러(약 910억원)에 계약(LOI)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조선업계는 지난 2004년 이후 동급의 VLCC 가격으로는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고 본다. 지난해 말 비슷한 규모의 유조선을 중국 조선사가 자국 선사와 계약한 금액은 8,800만달러였다. 불과 몇 달 사이 1,000만달러나 깎아서 수주한 것이다. 국내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8,800만~8,900만달러, 아무리 못해도 8,500만달러는 돼야 채산성이 맞는다”며 “한국 조선사들은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금액”이라고 토로했다.
심지어 중국 조선소조차 이는 이윤을 낼 수 없는 금액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해외 조선 전문지 트레이드윈즈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 같은 가격은 ‘자해(suicidal) 수준’”이라고 전했다. 특히 최근 들어 철강 가격 오름세로 후판 등 원가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더더욱 그렇다. 국내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주 잔량이 가장 많은 축인 한국 조선소들도 수주 절벽에 시달리는 형편이기 때문에 중국 조선소들도 물량 확보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저가 수주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의 치킨게임에서 밀린 국내 조선업계는 고육지책으로 조선소나 블럭 공장을 인건비가 싼 신흥국 등지로 옮기는 방안을 택하고 있다. 선종과 업체마다 다르지만 인건비가 선박 건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나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대형 상선 건조를 집중하고 있는 한진중공업이다.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에서 일하는 필리핀 근로자 수는 2만4,000명에 이르며 이들의 1인당 인건비는 국내의 10분의1에 불과하다. 한진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수빅조선소의 필리핀인 근로자 1명의 연급여는 500만원 정도”라며 “수빅에서는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만드는 동급 선박 대비 15% 이상 싼 가격으로 건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지금도 중국에서 블록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물류비를 더하더라도 중국에서 블록을 만들어 한국 조선소로 옮겨 조립하는 게 더 싸다고 해당 업체들은 설명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인건비가 올랐어도 여전히 한국에 비해서는 경쟁력이 있다”며 “고부가 선박 발주가 나오지 않는 한 인건비가 높은 한국 조선사들의 수주 경쟁력을 갈수록 약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혜진·이종혁기자 has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