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벼슬 높아지는 맛에 공무원 한다?

정양호 조달청장

빠른 고위직 승진 목표는 옛 말

안전하게 정년까지 근무 원해

계급제·직위분류제 혼합 고려를

정양호 조달청장정양호 조달청장


안동이 고향이다. 충효의 고장, 양반의 고장이다. 짓궂은 친구 녀석은 아직도 조선 시대쯤의 분위기로 아는지 안동에서는 아직도 한복 입고 기와집에서 사느냐고 물어본다. 아니다. 양복 입고 아파트에서 산다. 최근에 경북도청이 이전했다는 말까지는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물색없는 이 친구의 말 중에 반박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유교적 영향이 많이 남아 있어서 아직도 관을 존중하고 공직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향 친구 중에 공무원이 많다. 필자가 조달청장에 취임하자 안동 시내에 환영 플래카드가 여러 개 걸렸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안동에 연고가 없었는데 초중고 동문회에서 각각 알아서 걸었단다. 청장이면 옛날로 치면 종2품쯤 되는 참판을 배출했다면서….


흔히 공직의 가장 큰 맛은 벼슬(?)이 높아지는 것이라고들 한다. 공무원 초년시절을 돌아보면 자신의 꿈이 장·차관이라는 친구들이 많았다. 당시는 30대 국장, 40대 장관도 많았다. 장관만 다섯 번 해서 ‘직업이 장관’이라는 분도 있었다. 그러면 요즘도 벼슬 높아지는 맛에 공무원 할까. 아니다. 승진 빠른 것을 꺼려 하는 사람도 있다. 천천히 승진해서 정년까지 공직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

승진에 대한 태도는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필자의 공직 초중기였던 광화문·과천청사 시절은 고도성장 시기였다. ‘하면 된다’는 말이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당시 과장 정도면 권위가 대단했다. 사전예고 없이 퇴근 5분 전에 “오늘 한잔 하지” 하면 직원들이 선약을 모두 취소하고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퇴직 후 좋은 대우로 모셔가는 곳도 많았으니 승진(출세)에 대한 동인(動因)이 컸다.

IMF와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성장세가 둔화되고 일자리도 줄면서 공무원 권위가 많이 약해졌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퇴직 후 민간 부문 이직이 어렵고 공공기관 취업제한도 있는 터라 ‘가늘고 길게’ ‘출세보다는 안전하게’ 정년까지 근무하려는 희망이 늘었다. 개인의 행복을 우선으로 꼽는 가치관의 변화도 한몫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기치 아래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 자체를 왜곡하는 모습도 보인다. 승진 동인이 약해진 이유들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인간 유형을 ‘초인’과 ‘최후의 인간’으로 구분한다. ‘초인’이 자신을 넘어서는 무엇을 끊임없이 개척하고 도전하고 창조하는 사람이라면 ‘최후의 인간’은 현재 상태에 안주하면서 도전의식과 자기극복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점점 공무원이 ‘최후의 인간’을 닮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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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과 가정의 양립은 매우 중요한 가치다. 성공과 행복 중에서 어느 쪽을 우선 가치로 삼는가의 문제는 개인의 선택권이다. 하지만 공무원이 국가 발전이라는 명제를 저버릴 수 있는 직업인가.

다양한 욕구를 포용하는 공직제도가 필요하다. 고위직 승진을 위한 경쟁 트랙과 전문성과 함께 안정을 추구하는 것을 허용하는 별도의 트랙으로 구분해서 공직을 운영하는 것을 제안해본다. 계급제와 직위 분류제의 혼합은 어떨까.

일은 없는데 상사 눈치 보느라 퇴근 못 하는 직원을 배려해야 하는 것처럼, ‘빡세게’ 일해서 성공하고 싶은 젊은이도 포용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조직에서 더 고생하면서 능력을 키우게 만들고 성과를 감안해 승진시켜 국가의 동량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이제는 공직도 다양한 욕구를 담아내고 소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정보기술(IT)에서만 융합(convergence)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공직 사회도 다양한 가치 요소들이 융합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할 때다.

정양호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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